조선시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영의정 자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으며, 그들이 남긴 명성은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왕조 519년 기간 동안 영의정 자리는 일반 백성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었다.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했던 영의정 자리는 왕조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신분이 정해져 있었다. 영의정 자리를 비롯한 조선 왕조의 권력은 조선조 전 기간에 걸쳐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데 협력한 훈공자를 위주로 발탁하였기에 공을 세우기 위한 권모술수와 역모가 끊이질 않았다. 선조 때부터 발생한 사림들 간의 당파싸움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해야 했고, 결국엔 민란을 불러 일으켜 국가가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니 나라까지 통째로 왜놈들에게 바치는 경술국치를 당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공평무사하고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시킨 왕이 있었으니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재임 32년 동안 단 5명의 영의정을 임용함으로써 훈공자에게는 곁눈 조차 주지 않았고, 황희 같은 정승을 18년 1개월 동안 곁에 두고 정사를 펼침으로써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또한 정조의 공평무사한 탕평 정책은 조선을 정상궤도롤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 데도 일찍 승하하여 국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조선 왕조 519년 동안 173명의 영의정이 배출 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알려진 이름은 황희, 심온, 정인지, 신숙주, 유성룡, 이원익 등 불과 10명 안팎이다. 그렇지만 영의정에 오르지 못하고도 해가 갈수록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퇴계, 율곡, 이순신, 권율, 신사임당, 정약용, 허준 등은 모두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게 이바지 했던 사람들이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당대의 직위와 신분이 높아짐으로써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과 직위에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느냐가 후세의 평가를 받는데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알았으면 한다.
이 책은 왕조별 영의정 173명에 대한 개개인의 가족사항부터 경력과정, 재직기간 중의 기록, 죽을 때 남긴 졸기 평가를 중심으로 편집하였으며 영의정에 오르게 한 핵심 요인을 각 영의정 별 첫 소주제로 잡아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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