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변의 표지석, 뒤로 동십자각과 세종로정부청사가 보인다. |
서울 한복판 경복궁 옆에 청송심씨 20세조 두실상공 심상규(1765-1836)의 집터 표지석(標識石)이 세워졌다. 서울 종로구청은 조선조 후기 문신(文臣)과 학자로 이름을 날린 영의정 심상규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던 곳인 송현광장 앞에 집터 표지석을 세우고 지난 12월 23일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제막식에는 정문헌 종로구청장, 최창혁 종로문화원장을 비롯한 종로구 공무원들과 청송심문에서는 심대평 대종회 명예회장을 비롯하여 대종회집행부, 심재득 전 종로문화원장, 충택 공숙공종회장, 상인 이경공종회장, 재갑 곡산공종회장, 익섭 시정공종회장, 규선 수찬공종회장 등 많은 일가들이 참석하였다. 특별히 이번 제막식에는 두실상공 직계 후손인 심재성 배재대 명예교수와 미국 명문대에 재학중인 손자,손녀들이 참석하여 뿌리교육과 숭조정신을 빛냈다. 제막식을 마친후 종로문화원 지하 강당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익섭 오산시정공종회장의 경과보고와 정문헌 종로구청장의 축사, 대평 명예회장의 격려사가 이어졌고 규선 수찬공종회장의 두실상공 사적에 대한 문화적 가치와 표지석 설치의 意義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 대평 명예회장은 격려사에서 '이번 두실상공의 표지석을 세운 일은 청송심문의 큰 경사'라며 이번 일이 성사되도록 애써주신 익섭 시정공종회장, 재득 위원장 그리고 정문헌 종로구청장을 비롯한 관련 종로구청 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날 참석한 세종로포럼 운영위원회 익섭 위원장은 '문중 최초로 서울시역에 건립한 사적 표지석이다'고 평가했다.
두실상공 심상규는 안효공파 수찬공(휘 達源)의 11대 손으로 청송심씨를 빛낸 13相臣 중의 한 분이다. 公은 타고난 재능과 영민함으로 육조판서를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최고의 문신이었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한 북학파의 대표적 학자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노론 시파의 거두로서 당대를 풍미하였다. 뿐만아니라 문장과 글씨가 출중하여 많은 주옥같은 글과 저서를 남겼으며, 가성각(嘉聲閣)을 지어 4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한 장서가로도 유명하였다. 이처럼 두실상공은 18세기 이후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주도한 경화사족(京華士族)의 상징이었다. 심상규가 거처하던 집은 경복궁 동편 벽동(지금의 송현동)에 위치한 대저택으로, 수많은 장서와 고동서화(古董書畵)를 보유한 가성각과 각종 기암괴석, 화초로 꾸며진 이국풍의 정원인 소안원(蕭雁園)이 조성돼 있어 당시 문사(文士)들이 교류하던 최고의 문화공간이었다.
표지석이 설치된 위치는 경복궁 광화문에서 안국동으로 향하는 율곡로변의 송현광장 입구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이다. 표지석 전후면에는 심상규의 행적과 저택에 대한 설명문이 기술되어 있고, 좌우측면에는 심상규의 생애와 송현동의 역사변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표지석은 높이 1.4m에 가로66cm×세로69cm 대형 크기로 서울시에 설치된 집터 표지석으로는 가장 크게 제작되었으며, 흑색의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글씨를 새겼다. 심상규 표지석은 서울 도심에 세운 청송심씨의 첫번째 사적(史跡) 기념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번 표지석 설치에는 종로문화원장을 지낸 심재득 13상신숭조위원장과 직계 종회인 심익섭 오산시정공종회장이 주도적으로 역할했으며, 심재복 곡산공종회감사(건축사), 심규선 수찬공종회장(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심재석 박사가 힘을 합쳤다.
한편 이날 청송심씨 5세조 인수부윤공종회 재구 회장, 안효공종회 언촌 회장, 6세조 공숙공종회 충택 회장 명의로 축하 화환을 보냈다.
표지석 전면 |
왼쪽부터 재갑 곡산공종회장, 대평 대종회 명예회장, 익섭 오산시정공종회장, 정문헌 종로구청장, 재득 13상신숭조위원장, 상인 이경공종회장, 최창혁 종로문화원장 |
제막식에 참석한 심문 일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