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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일송상공(諱: 喜壽 11世祖 )과 기생 일타홍의 사랑

2. 심총각  잠에서 깨어나다

심총각은 반색을 하며

“어때 어머님의 허락을 받았는가?”

“네! 마님의 허락을 받았사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날마다 너와 함께 지낼 수 있겠지.”

심총각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지 힘께 사는 것부터 따지고 나선다.

“도련님은 정말로 글공부를 할 결심은 하셨사옵니까?”

“물론이지 장부 일언이 중천금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타홍은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비록 더벅머리에 총각이기는 하나 남아의 기백과 긍지는 살아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일타홍은 짐짓 정색을 하고

“소첩이 도련님을 모시게 된 이상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겠사오나 그리 하는데도 금도가 있는 법입니다.”

“금도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느냐?”

“서방님은 공부를 하시기 위해서라도 매일 잠자리를 함께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러면 어찌 한다는 말이냐?”

“도련님이 책을 한 권 떼시면 그 날은 밤을 함께 하겠사옵니다.”

“한 달에 한 권을 떼시면 그 날 하룻밤만 함께하게 될 것이며, 매일 한 권씩 떼시면 매일 밤을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심희수는 기가 막힌다는 어투로 말하였다.

“공부는 열심히 할 것이니 삼일에 하루씩이라도 함께할 수 없겠느냐?”

그러나 일타홍은 냉혹하게 거절하였다.

“함께 지내고 싶으면 삼일에 책 한 권씩은 꼭 떼야 하겠는걸!”

이렇게 단언하듯 말하며 심총각은 내일부터라도 당장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이것만이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좋은 방책이라 생각하였다.

그날 밤은 목메어 그리던 그 여인과 긴긴밤을 함께 보낸 것은 말 할 것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글공부를 어디서 할 것인지를 논의하게 되었다.

일타홍이 말했다.

“노수신(盧守愼) 영감은 일찍이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를 지내시고 퇴계(退溪)선생과도 막역한 사이요. 인격도 고매할 뿐 아니라 학문에 있어서도 당대에 대학자(大學者)라고 들었습니다.”

“노수신 영감이시라면 우리 아버님과도 동문수학 하신 터라 거절하지는 않으실 게다.” 이리하여 일타홍이 추천한대로 노수신을 스승으로 뫼시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노수신 영감은 심총각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렇잖아도 자네가 공부를 전폐하고 주색에 빠져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매우 걱정하였더니 이렇게 자네가 나를 찾아주니 기쁘기 한량이 없네.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가문의 영광을 더욱 빛나도록 하게나.”

심희수는 그 날부터 공부를 시작하였고 책 한 권씩은 떼야 집에 오기로 하여 삼일에 한 권씩은 꼭 떼고 부지런히 집에 돌아왔다.

그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도 꼭 그래야 하고 그만큼 그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배운 책을 가지고 반드시 강을 받아보고 통과해야 잠자리를 함께 하곤 하였다. 그래도 심총각은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였다.

다시는 공부를 할 것 같지 않던 망나니 한량이 이렇게 까지 변한 것은 모두가 일타홍의 출중한 계략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때는 갑자기 그녀의 생각에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어느덧 공부를 다시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났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고 총명해서 논어, 맹자, 역경, 춘추(論語, 孟子, 易經, 春秋)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달하였다.

한번은 소식이 없다가 보름 만에야 책을 한 권 들고 들어왔다.

“시경을 보름이나 걸려서 오늘에야 겨우 다 배웠네. 그동안 집 생각이 간절하여 한밤중이지만 이렇게 달려왔다네.”

일타홍은 책을 받아들고 “孔子님이 삼천독(三千讀)을 하셨다는 시경을 도련님은 보름동안에 다 배우셨다니 정말 장하십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강을 받겠습니다.”

심희수는 눈을 감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빼지 않고 줄줄이 외우는 것이었다.

일타홍은 지극히 놀랐다.

“도련님 장하십니다. 도련님의 머리가 이처럼 총명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일타홍은 칭찬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내대장부가 한번 결심하면 무엇인들 못하겠느냐! 나는 너 때문에 학문에 자신을 갖게 되었고, 세상사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으니 네가 태어난 가문은 비록 천하지만 부덕이 높고 행실이 정숙한 점으로 보아서는 너야말로 요조숙녀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였다.

이날 밤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일타홍은 타락한 한 남자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며 사랑하는 서방님 품안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하였다.

심희수는 일타홍과의 사랑에 취해 詩 한수를 지으니

 

깁창가 농탕질로 밤을 지새네

아양겹고 수줍음 곱기도 해라

너도 날 사랑하느냐 속삭였드니

허튼 머리 만지며 고개 끄덕여

(심영구의 “눈물로 베게적신 사연 중에서”)

 

다음날 일타홍은 어떤 문제에 부닥쳐 골몰하고 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도련님은 1~2년 내에 급제하는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서방님은 장가를 가셔야 한다. 내가 아무리 함께 산다고 하나 이 사회는 기녀와는 정식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처녀장가를 들어야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만 같이 한평생을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기생신분이었던 그는 平生을 함께 해도 소실이지 정실은 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러나 서방님의 장래를 위해서는 처녀장가를 들어야 하고 일타홍은 그일 까지도 맡아야하는 얄궂은 입장이었다.

생각하면 사랑하는 님을 어찌 다른 여자에게 나눠줄 수 있겠는가.

일타홍은 이때처럼 기생이라는 신분이 야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련님이 처녀장가를 들고 과거에 장원만 하신다면 나는 이 집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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