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열사와 휘 현 묘갈명

충열사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通政大夫敦寧府都正忠烈公諱誢墓碣銘竝序
始興之東廣輪揜坎卽有明朝鮮國忠臣通政大夫敦寧府都正沈公誢曁厥配烈女淑夫人宋氏同封之墓也墓成明年爲崇禎十一載戊寅春公弟判書公諿自爲狀且治牲石使彌甥之奉公祀者朴長遠請銘于翊聖翊聖起拜以受愾然而曰丙子之亂亡論棄義偸生失君臣父子夫婦職號能死而不隕其聲亦亡如公若夫人從容殉節則其所講非苟焉已耳況吾東方禮義之稱頼是而有辭於天下後世則銘其可已按狀公字士和靑松人有諱德符位都將相封靑城伯啓慶燾后世爲褒紀高祖順門議政府舍人曾祖達源左通禮贈吏曹叅判祖鎡繕工監僉正贈左贊成考諱友正驪州牧使贈吏曹判書娶於牧使安汝敬之女以隆慶戊辰生公幼有美質長益祥順家庭之間夔夔奉引一於無違才優程文屢發觧季氏先捷公喜曰斯已悅親吾可以已時年始壯人甚難之試爲吏仕自厚陵叅奉例轉庶司宰歙谷有遺愛佐咸興報殊績超階陞朝復歷沃川豊德鐵原所莅著績判書公自秋官爲養出爲安邊公除淮陽兩府只隔一嶺還徃有煒人稱孝理及遭諱秉制老而克篤世皆儀之晩擾敦府公已宿瘵從 宗社入江都自矢捐軀之志受敵之日先埋家廟木主於屛處手寫遺疏整冠帶北向四拜遂自決 上廻鑾見公遺疏敎曰國家於沈誢無深恩厚澤而臨亂死節先於重臣若非大賢何以至此其妻宋氏同死之節亦甚可嘉幷旌門錄用子孫以表忠烈夫人礪良世家領議政軼之孫牧使寧之女叅贊夷簡申公諱瑛之外孫純德令儀叶于尊章又能通女誡辨利義舅氏常稱其必爲節婦云遘變之初公以意喩之夫人乃擧從容堂事而答之公大愉及難果盥沃易服偕公就義如赴樂地寇退始克窆是年三月十日也公無嗣有兩女長適承旨洪憲次適直長朴烜皆有所育而長遠卽烜之出也承文院正字公事親盡其道友于盡其情居官盡其力臨亂盡其節古人所謂吾必謂之學矣者耶吁可敬也銘曰
是伉是儷而烈而忠競爽宇宙日月我東辭欲無溢刻示弗窮

東陽尉 申翊聖 撰



통정대부돈녕부도정충렬공휘현묘갈명병서(번역문)

忠 烈 祠

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이 사당은 조선(朝鮮) 인조(仁祖) 14년(1636)병자호란(丙子胡亂)시 종묘(宗廟)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청군(淸軍)이 이곳을 함락하자 남문루(南門樓)위에서 화약을 쌓아 놓고 불을 붙여 순절(殉節)한 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선생을 주향(主享)으로 하고, 배향(配享)으로는 공조판서 이상길(工曹判書 李尙吉) 외 26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인조 19년(1641)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명명하였던 것을 유수 허휘(留守 許徽)가 효종(孝宗) 9년(1658)에 충렬사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명륜당(明倫堂)과 동(東)․서재(西齋)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韓式木造) 맞배지붕 와가(瓦家)로 이익공(二翼工) 겹처마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시흥(始興)의 동쪽에 있는 광륜엄감(廣輪揜坎)①은 곧 조선국 충신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 심현 공과 그 부인 열녀 숙부인 송씨를 함께 장사지낸 무덤이다. 묘를 쓴 이듬해는 무인(戊寅:1638)년으로 그 해 봄에 공의 아우 판서공 즙이 스스로 행장을 만들어 가지고 비석을 세울 때 미생(彌甥)②으로 공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 박장원(朴長遠)을 시켜 익성(翊聖)에게 명(銘)을 청했다. 익성이 일어나서 절하고 받고나서 개연(愾然)③하게 말하였다.
『병자(丙子:1636)년 난리 때 의로움을 버리고 생명을 도적질해서 군신과 부자와 부부의 직분을 버린 사람들을 논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또한 공과 같이 부인도 조용히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그 강론하는 것이 구차스러울 뿐입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찬을 듣는 것이 이러한 일 때문이고 이것이 천하와 후세에 자랑거리가 된다면 명을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행장(行狀)④을 상고해 보니, 공의 자는 사화(士和)로 청송 사람이다.
이름을 덕부(德符)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벼슬이 도장상(都將相)⑤을 지내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 경사가 비치는 길을 열어 후세에 포상(褒賞)의 기록을 남겼다. 고조부인 순문(順門)은 의정부 사인을 지냈고 증조부인 달원(達源)은 좌통례를 지낸 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조부인 자(鎡)는 선공감 첨정을 지낸 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우정(友正)인데 여주(驪州) 목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부사 안여경(安汝敬)의 딸에게 장가들어 무진(戊辰:1568)년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고 커갈수록 더욱 상서로움과 순조로움을 보여 집에 있을 때도 조심조심 지내면서 위로 받들고 아래로 부림에 조금의 차질이 없었고 재주가 뛰어나고 글을 잘하여 여러 번 지방시에 합격했다. 계씨(季氏)⑥가 먼저 과거에 합격하니 공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 일이 어버이를 기쁘게 했으니 내 마음이 놓인다.』
그때 공의 나이 이미 장년기였는데 사람들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시험삼아 하급관리가 되었는데 후릉(厚陵)참봉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재(司宰)⑦로 전전했다. 흡곡(歙谷)에게 유애(遺愛)⑧가 있어 함흥으로 따라가서 보좌역을 했는데 특수한 공적이 있다고 보고해서 계급을 초월하여 승진하고 조정으로 돌아왔다. 다시 옥천(沃川)과 풍덕(豊德)과 철원(鐵原)의 수령을 지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이 현저했다.
판서공이 형조에서 몸을 요양하고자 안변(安邊)부사로 나가니 공도 회양(淮陽)부로 나갔다. 안변과 회양 사이는 고개 하나가 가로막혀 있을 뿐이므로 오고 가는 것을 자주하니 사람들이 효자라 칭찬했다. 상을 당해서는 예제를 잘 지켜서 몸이 늙었지만 더욱 두텁게 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땅하다고 했다.
늦게 돈녕부에 임명되었으나 공에게는 이미 숙채(宿瘵)⑨가 있었는데 종사(宗社)⑩를 따라 강도(江都)⑪로 들어가서 스스로 죽어서 나올 각오를 하고 있었다. 적이 강도를 침공하던 날 먼저 가묘(家廟)⑫와 신주(神主)⑬를 외진 곳에 묻어 두고 손수 유소(遺疏)⑭를 쓴 뒤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자결(自決)⑮하였다. 임금께서 환궁해서 공의 유소를 보고 하교하셨다.
『국가는 심현에게 깊은 은택과 두터운 덕을 베푼 것도 없는데 난에 임하여 죽어서 절개 지키기를 중신(重臣)들보다 먼저 했으니 대현(大賢)이 아니고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느냐. 또한 그 아내 송씨가 함께 죽은 절개는 또한 매우 아름답구나. 아울러 정문(旌門)⑯하고 그 자손을 기용해서 충렬을 표시하도록 하라.』
부인은 여산(礪山)의 세족으로 영의정 질(칋)의 손녀며 목사 영(寧)의 딸이고 참찬 이간공(夷簡公) 신영(申瑛)의 외손녀이다. 순수한 덕과 착한 행의가 존장(尊章)⑰에 언급되었고 또 여계(女誡)⑱를 통해서 이익과 의리를 구별하니 시아버지가 항상 절부(節婦)⑲라고 칭찬했다. 변란이 시작되었을 때 공이 자기의 뜻을 말하니 부인도 종용당(從容堂)의 일을 들어서 남편의 뜻에 따른다고 하니 공도 크게 안심하였다. 난이 닥치자 과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공과 함께 의로움을 지켜 자결하는데 마치 극락이나 가는 것 같았다. 적이 물러가자 장사를 지냈는데 이해 3월 10일이었다.
공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둘 있는데 맏딸은 승지 홍헌(洪憲)에게 출가하고 둘째 딸은 직장 박훤(朴煊)에게 출가했다. 모두 자식이 있는데 장원(長源)은 곧 훤(煊)의 아들이다. 승문원 정자로 있다.
공이 어버이를 섬기는데 그 도리를 다했고 동기 간에는 그 정을 다했으며 벼슬에 있을 때는 그 힘을 다했고 난을 당해서는 그 절개를 다했으니 옛사람들이 말한 「나는 반드시 배운 사람이라 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아, 공경스럽구나.
명(銘)하기를,
이 남편과 아내는 열렬(烈烈)하고도 충성스럽구나.
빛은 우주에 가득하고 해와 달은 우리 나라를 밝히도다.
더 이상 할 말 없어 돌에 새겨 무궁토록 전한다.

동양위 신익성이 지음.


註① 광륜엄감(廣輪揜坎):수레바퀴처럼 꼬리 없이 둥글게 쓴 무덤.
② 미생(彌甥):딸의 아들. 즉 외손자.
③ 개연(愾然):한숨 쉬는 모양. 탄식하는 모양.
④ 행장(行狀):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행한 기록. 벼슬살이. 선행 등이 수록되어 있음.
⑤ 도장상(都將相):군권과 행정권을 모두 장악한 사람. 정승의 별칭.
⑥ 계씨(季氏):막내 아우. 형제를 백(伯), 중(仲), 숙(叔), 계(季)의 네 단계로 구분하여 부름. 즉 네 번째.
⑦ 사재(司宰):각 부서의 책임 관리자.
⑧ 유애(遺愛):남긴 사랑. 선대에게 입은 은공을 그 자손에게 사랑으로 갚아주는 일.
⑨ 숙채(宿瘵):오래된 병.
⑩ 종사(宗社):종문과 사직. 비유하여 국가.
⑪ 강도(江都):강화도. 고려시대 몽고의 난 당시 임시 도읍으로 정해진 곳.
⑫ 가묘(家廟):집에서 개인이 모시고 있는 사당.
⑬ 신주(神主):사당에 모셔놓은 위패. 대부분 밤나무로 만들고 하얗게 분칠을 함.
⑭ 유소(遺疏):죽을 때 유언으로 남기는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⑮ 자결(自決):스스로 목숨을 끊음. 자살.
⑯ 정문(旌門):문에 내리는 홍살.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나라에서 인정하는 표시.
⑰ 존장(尊章):이름 있는 관원들이 쓰는 글. 또는 임금이 쓰는 글.
⑱ 여계(女誡):여성이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하는 계율.
⑲ 절부(節婦):절개 있는 부인. 또는 절개를 지키는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