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생의 행적 |
4先生의 행적(行蹟)
1. 망세정(忘世亭) 심선(沈璿) 선생(1408~1467) 字는 윤부(潤夫), 號는 망세정(忘世亭) 左議政 심덕부(沈德符)의 증손으로 天性이 孝友忠信하고 재기(材器)가 발군(拔群)하여 6年間이나 시묘(侍墓)살이를 하였으며 學問이 넓고 크게 통달(通達)하였다. 世宗17年(1435) 진사시(進士試)에 장원(壯元)하고 才賢으로 천거(薦擧)되어 여러 고을의 군수를 거쳐 예조참의(禮曹叅議) 黃海監司 開城留守 京畿道 관찰사(觀察使),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혔다. 단종(端宗)이 遜位하자 벼슬을 버리고 양주(楊州) 풍양(豊壤)에 忘世亭을 짓고 草野에 묻혀 餘生을 보내면서 세조(世祖)가 여러차례 벼슬하라고 불렀으나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世上사람들은 先生의 높은 學德과 節義를 追仰하였으며 後에 보국숭록대부영돈녕(輔國崇祿大夫領敦寧:正1品)에 追贈되었고 장릉(莊陵:端宗陵)의 조사단(朝士壇)에 祭享되었다. 2. 제호정(霽湖亭) 심광형(沈光亨) 先生(1510~1550) 字는 문옹(文翁), 號는 제호정(霽湖亭:忘世亭 沈璿의 曾孫) 일찍이 孝行으로 이름이 世上에 알려졌고 깊이 경사(經史)에 통달(通達)하여 호령간(湖嶺間)의 많은 선비들과 교유(交遊)하였다. 당시 김정국도백(金正國道伯)이 『孝는 증자(曾子)를 이었으며 學問은 주자(朱子)의 正統을 遵守하였고 文章과 才能과 禮法을 행함에 있어 도의(道義)를 바탕으로 자세(姿勢)를 확립(確立)하였으며 名分과 節義를 重히 여기는 풍토(風土)를 조성(造成)하고 일으켰다』라고 나라에 천거(薦擧)하여 中宗께서 광양(光陽), 곡성(谷城), 남평(南平), 순창(淳昌) 四邑의 中學訓導로 特別 제수(除授)하였다. 만년(晩年)에 江湖의 승경(勝景)을 좋아하여 제호(霽湖)에 함허정(涵虛亭)을 짓고 수양(修養)의 처소(處所)로 삼았는데 당시 道伯이 『名門의 子孫으로 어찌 訓導에 그칠 것인가?』하고 더 出仕할 것을 권(勸)했으나 웃고 불응(不應)하였는데 이는 乙巳士禍의 先見之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3. 두암(杜菴) 심민겸(沈敏謙) 先生(1570~1646) 字는 사윤(士允), 號는 두암(杜菴:忘世亭 심선(沈璿)의 五代孫)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至極)하였고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하였다. 선조(宣祖)25年(1592)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원수(元帥) 궐율(權慄)을 좇아 水原에 주둔(駐屯)하고 군량공급(軍糧供給)에 힘썼으며, 幸州接戰에 參加하여 기공(奇功)을 세웠다. 丁酉再亂에 또한 義兵을 이끌고 力戰하는 한편 남원성(南原城)을 수축(修築)하여 敵에 대비(對備)하기도 했고, 宣祖31年(1598) 순천(順天) 왜교전(倭橋戰)에서도 兵糧供給에 注力하여 전세(戰勢)를 유리(有利)하게 이끌었다. 戰後, 주부(主簿)에 제수(除授)되었고 仁祖2年(1624) 갑자괄란(甲子适亂)이 일어나자 병(兵) 속(粟)을 모집(募集)하여 근왕(勤王)하였으며 仁祖5年(1627) 정묘호란(丁卯胡亂) 때는 世子를 호종(扈從)하였고 仁祖14年(1636) 丙子胡亂 때도 의곡(義穀)을 募集하여 강화(江華)에 輸送하는등 國難이 있을 때마다 赴義하여 많은 功을 세웠는데 나주(羅州) 忠壯祠에도 제향(祭享)되었다. 4. 구암(龜巖) 심민각(沈民覺) 先生(1589~1643) 字는 숙선(叔先), 號는 구암(龜巖:忘世亭 심선(沈璿)의 6代孫) 어려서부터 人格이 출중하였고 孝道와 友愛가 극진(極盡)하였으며 文章과 무술(武術)을 겸비(兼備)하고 강개(慷慨)한 기질로 풍채(風彩)가 영매(英邁)하였다. 仁祖2年(1624) 甲子适亂에 義兵과 가동(家쪌) 9百餘名을 이끌고 倡起하여 운봉(雲峰)縣監 황일호(黃一皓)와 함께 王을 公州에서 호종(扈從)하고 안현(鞍峴)싸움에서 승전(勝戰)을 거두니 王이 그 功을 포상(褒賞)하여 청안(淸安)縣監과 증산(甑山)縣監을 除授하였다. 仁祖14年(1636) 丙子胡亂이 일어나자 先生은 다시 義兵을 일으켜 湖西地方을 지키면서 江華島에 物資를 운반했으며 상소(上疏)하여 和親함을 反對하였다. 亂後, 영유(永柔)縣令에 除授되었으나 사퇴(辭退)하고 江가 구암(龜巖)에서 낚시를 드리우며 遺命으로 丙子後의 官職을 쓰지 못하도록 家族에게 당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