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건상량문

父而子子而孫曾見忠功崇奉院斯壇壇斯宇乃驗世道替隆苗裔殫誠縫掖助奠 維玆 良溪里舊院靑松家先祠 定安封君易名特蒙天章雲漢遁齋公扁號罔僕獨守西山風聲 聖朝龍興萬億千肇基勳顯麗氏社屋七十二杜門義高 喬梓之出處雖殊其奈人歸天與葵藿之貞忠不沬寧忍世忘跡遯 粤若乃愛菴公幼稱輔國産子 德源人紅顆枾神感至誠常靜山血淚岩世著異蹟 愛君希泰憂國願豊之句忠孝可知使臣以禮事君以忠之論都兪可致 德齊盛門三享幷昭代兩丁 公議攸同甲午建戊戌額士林久鬱戊辰毁丙午壇 義雖存羊爰謀棟宇重復禮當奠幣爲擧俎豆再營 鳩材始功鴻匠殫技  宮有恤斷松栢而從繩定宿方中植土圭而揆日 拓舊庭而殖殖多士趨蹌列新棟番丸丸人牕宣朗 千古精忠偉節敬炳三上香烟百年間世大功恭疏六韻 頌 構成短引載擧脩樑 兒郞偉抛樑東 瑞石峯題瑞旭紅 定社安民功帶礪 日光鮮曜漢陽宮 兒郞偉抛樑西 長松明月影高低 聖君不夢來良弼 天奪其年運不齊 兒郞偉抛樑南 天畔湧珍翠滴嵐 黃土茫茫藏義魄 千年佳氣望中含 兒郞偉抛樑北 三聖珍原吾樂國 舊域江山日月臨鰲鄕賴有扶持力 兒郞偉抛樑上 舊祠突兀人瞻望 洋洋陟降 精靈 執笏祭時興拜唱 兒郞偉抛樑下 復雷兆朕回中夏 永淸四海來將占 文敎扶桑開廣廈 伏願上樑之後忠賢作於珍原絃誦開於東魯鄕人祭社之禮直爲講道先茅後儒崇德之儀允合養士根本 莫謂章甫適越月落日升追述榛苓思周亂極治致 上章困敦天中節濟州梁會甲頌

중건상량문(번역문)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가 충성과 공훈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더니 서원철폐로 서원이 단(壇)이 되고 단이 사우(祠宇)가 되었으니 이에 세도(世道)의 성쇠(盛衰)를 징험(徵驗)하였고 후손이 정성을 다하였네 오직 이 양계리(良溪里)의 옛 서원은 청송심씨의 선조사당으로 정안(定安)은 봉군(封君)되고 임금의 은총(恩寵)을 받았으며 둔재(遁齋)는 이조(李朝)에 벼슬하지 않고 홀로 서산(西山)에서 풍성(風聲)지켰도다. 성조(聖朝:태조)는 개국(開國)하여 만억년(萬億年)의 터전을 잡았고 고려가 망하니 두문동(杜門洞) 72현의 절의(節義)가 고결(高潔)하였네 나라의 큰 재목이 나가서 벼슬하는 일과 물러나서 집에 있는 일은 비록 다르지만 벼슬하여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자취를 감추고 절개를 지키는 것이 그 귀추(歸趨)는 다를게 없네 애암공(愛菴公)은 어린 나이에 임금에게 충성할 줄 알아 임금이 승하(昇遐)하시자 바위에 올라가 통곡(痛哭)하므로 돌이 피로 물들었으며 임금 사랑하고 나라 근심하는 글귀를 남기고 임금은 예절을 지키고 신하는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군신간(君臣間)의 문답(問答)이 있어서 삼대(3代)를 서원에 같이 배향하여야 한다는 공의(公議)가 일치되었다. 갑오년에 세우고 무술년에 액자(額子)를 걸고 무진년에 철폐(撤廢)되었으며 병오년에 단(壇)을 쌓았으니 의(義)는 비록 구례(舊例) 또는 허례(虛禮)를 짐짓 버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는 일이라고 하나 이에 서원을 다시 지어 제사 지내려고 돈을 모아 공사를 시작하니 나라에서 도와주어 터를 닦고 나무를 심어 옛 뜰을 넓히어 여러 선비들이 예절을 갖추어 줄지어 설 수 있게 하고 기둥이 반듯하니 창문이 밝고 밝네 천고충신(千古忠臣)의 위대한 절개를 공경하여 향불 세개를 피우고 상량문을 지어 들보를 올리네 아랑위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서석산(瑞石山) 봉우리에 아침 해가 떠오르네 나라와 백성을 안정(安定)시킨 공은 산이 다 갈리어 없어지고 강물이 다 말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햇빛은 한양궁(漢陽宮)에 선명하게 비치네 아랑위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장송명월(長松明月)의 그림자가 높았다 낮았다 하네 성군(聖君)이 꿈에도 충신오는 것을 잊지 않았으나 하늘이 수(壽)를 주지 않으니 운수가 고르지 않네 아랑위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하늘가에 흐릿하고 푸르스름한 남기(嵐氣)가 보이네 아랑위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세 성인(聖人)이 나온 진원(珍原)이 우리의 즐거운 곳일세 구역(舊域)의 강산(江山)에 해와 달이 밝으니 내 고향 장성(長城)도 부지(扶持)할 힘 얻었네 아랑위 들보를 위로 던지니 옛 사당이 우뚝 솟아보이네 넓고 넓은데서 정령(精靈)이 오르내림에 홀기(笏記)를 잡고 제사지낼 때 배흥(拜興)을 불렀네 아랑위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우뢰소리 다시 들림은 여름이 돌아올 징조요 영원히 천하에 펼것은 문교(文敎)를 널리 베푸는 것일세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에는 충현(忠賢)이 진원(珍原)에서 나오고 글 읽는 소리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게 하며 고을사람들의 사당에 제사지내는 예(禮)가 바로 도를 강(講)하는 것이 되어 먼저 본보기가 되면 후세 유생(儒生)들의 덕을 숭상하는 의식이 진실로 선비를 기르는 근본에 맞을 것이니 조상의 사행(事行)을 추술(追述)하여 어지러운 것은 없애고 지극히 잘 다스려지게 하옵소서.

경자년5월5일
제주 양회갑이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