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위정기


領議政 諱 沈公象奎 以威亭記
象奎守南城旣爲堂爲樓於行宮之北又爲亭於樓之西名之曰以威以爲與賓佐軍校燕射之地易繫辭曰弧矢之利以威天下聖人觀衆於天觀法於地以智創物當其未有弧矢之時而輒爲之其禽駭獸獷之類一朝見木之弦者剡者發必有殪則莫不震恐相率而馴其亦可以威天下矣然雖非聖人莫可創也旣一有弧矢焉則其駭且獷而震恐者亦將漸習而遍能之是又安可以威天下哉故非聖人而徒欲恃此以威於人雖一井之里吾知其不能也而况天下之衆乎肅愼之楛矢林胡樓煩之騎射匈奴之鳴鏑莫强於天下是皆聖人之所欲爲者也而今其習而能之反已威於人矣然則吾今日射於此者將安所可威乎夫弧矢器也如耕之器來耟錢鎛器一也地有有膴确之異農有良惰之殊以其獲輒相懸譬則戎賊之悍猾貧暴确而惰者也君子之仁義忠勇膴而良者也彼悍猾貧暴徒習其器而尙能莫强焉則苟有仁義忠勇而又益以其器之利如是而不威天下者吾未知信也然則吾射於此非直弧矢之是事深勉而大望於此城之人欲其日興於仁義忠勇之塗豈卒不能以威天下乎哉

영의정 휘 심공상규(沈公象奎) 이위정기
상규(象奎)가 남한산성의 수어사(守禦使)로 있을 적에 行宮의 북쪽에 이미 堂을 만들고 누(樓)를 만들었으며 또 누의 서쪽에 亭을 만들고 이위(以威)라 이름지어 빈좌(賓佐) 군교(軍校)①와 더불어 연사(燕射)②하는 곳으로 만들고 주역(周易)의 괘(卦)밑에 본문을 덧붙여 설명한 말을 지어 말하기를 활과 화살의 예리(銳利)함은 천하를 두렵게 하는 것이니 성인(聖人)이 하늘에서 점괘(占卦)를 보고 땅에서 방법을 관찰하여 슬기로써 일을 창조하더니 그 활과 화살이 있지 않을 때를 당함에 문득 그 새처럼 경계하고 짐승처럼 사나운 것들을 위하여 하루아침에 나무로 만든 활에 화살을 쏘면 반드시 죽는 것을 보이니 떨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들이 없어 서로 거느리고 길들였으니 그 또한 천하를 두렵게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것이요, 이미 활과 화살이 있었으니 그 새와같이 경계하고 짐승처럼 사나운 것들이 떨고 두려워하는 것을 또한 장차 점점 질들여 두루 익숙하게 하면 이것이 또 어찌 천하를 두렵게 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이 아니면서 다만 이것을 믿고 사람을 두렵게 하고자 하는 것은 비록 한 마음에서도 내가 그 능히 하지 못할 것을 알았는데 하물며 천하의 많은 사람들이리오 숙신(肅愼)③의 호시(楛矢)④와 임호〔林胡)⑤ 누번(樓煩)⑥의 말타고 활쏘는 것과 흉노(匈奴)⑦의 명적(鳴鏑)⑧은 천하에 막강(莫强)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성인이 만들고자한 바였으나 지금은 익히고 능숙하여 도리어 이미 사람을 두렵게 하니 그런즉 내가 오늘날 여기에서 활쏘는 것은 장차 무엇을 두렵게 하는 것일까 무릇 활과 화살은 군기(軍器)이니 농사짓는 사람의 쟁기 괭이 호미와 같은 농기구(農器具)와 같은 것이다. 땅은 비옥(肥沃)하고 척박(瘠薄)함이 다르고 농사짓는 것은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이 달라 그 수확을 할때 문득 서로 현격한 차이가 나니 비유하면 오랑캐의 사납고 탐내며 포악한 것은 척박하고 게으른 것이요 군자의 인의충용(仁義忠勇)은 비옥하고 부지런한 것이니 저 사납고 탐내며 포악한 무리들이 병기(兵器)를 익혀 오히려 능히 막강하니 진실로 인의충용(仁義忠勇)이 있고 또 그 그릇에 이로움을 더함이 이와같고서도 천하를 두렵게 못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겠도다. 그런즉 내가 여기에서 활을 쏘는 것은 다만 활과 화살에만 일삼고 깊이 힘쓰는 것만이 아니고 이 성의 사람들에게 대망(大望)을 주어 그날로 인의충용의 길을 진흥(振興)시키고자 하게 되면 어찌 마침내 능히 천하를 두렵게 하지 못하리오.

주(註)
① 군교(軍校):조선시대 각 군영(軍營)에 속한 장교와 지방관청의 군무(軍務)에 종사하던 속역(屬役)의 총칭.
② 연사(燕射):옛날 사례(射禮)의 하나, 임금이 군신과 함께 술을 마시며 활을 쏘던 연회.
③ 숙신(肅愼):춘추전국시대에 중국 북쪽에 있던 나라 이름.
④ 호시(楛矢):호목(楛木)으로 화살대를 만든 화살.
⑤ 임호(林胡):한(漢)나라 때 오랑캐의 종족.
⑥ 누번(樓煩):춘추시대 북쪽의 오랑캐 나라 이름.
⑦ 흉노(匈奴):기원전 3∼1세기 사이에 장성(長城) 지대와 몽고지방에서 활약한 북적(北狄)의 일파인 유목민족.
⑧ 명적(鳴鏑):쏘면 바람을 받아 울도록 만든 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