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휘 상규)좌승당기

二十世祖 領議政 諱 沈公象奎 坐勝堂記
南漢爲陪都守禦使出鎭兼留守居行  宮開府坐衙盖沈沉不敢安爲行  宮面東而上宮之左舊有廊廊前後有脩垣垣下俱有路以上西園園可以射射則由之非人所履皆蕪穢不可復知其地之爽塏幽穩也暇日與賓佐射忽若有所覩遂徹其前垣而移其廊於垣之限廊高於垣宮以益還又拓其後垣築于北磵之上磵與垣幷直而東每水至聲益聞于內背垣而爲堂西爲樓以仰淸凉東爲廳事頫城中中爲室堂成而坐於樓坐於室於廳事者皆曰地爽塏幽穩未始見其若是勝也請余名之余曰坐勝可乎皆曰然余曰噫戱漢山之城史稱百濟溫祚之所都西北阻斗峽漢水東西控嶺湖而捍蔽京師天作之高長子之近棧閣之險皆安坐無戰不可勝之地也方丙子瀋人之襲我也懸軍疾馳蹂兩西躪都城三日而渡三田何其易也渡而彌滿於山之下鱉望蟻旋而不得上者四十餘日又何其難也夫我旣坐於不可勝之地而又以臣民之衆兵力之全四十餘日之久指麾號召爲必可勝之術則山下之騎其不爲釜中之魚而片甲可得返哉乃事卒不能然者直坐於是其安坐不可勝而伈伈然無一必可勝之術也是則坐勝之害也宜若未可以名其堂然旣有不可勝之地以自固又爲必可勝之術以制敵雖安坐無戰可常勝也此其名堂之意歟今余之守此城亦未有其術焉則幸  聖朝寬假老臣不責其無能使以牙節坐領形勝得自詑爲升平之榮遇堂之名所以識次歟

20세조 영의정 휘 심공상규(沈公象奎) 좌승당기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쌓아 올릴적에 도수어사(都守禦使)로 진(鎭)에 나가 유수(留守)를 겸하고 있으면서 행궁(行宮)①에 관아(官衙)를 설치하고 앉았더니 침침(沉沉)하여 감히 편안하지 않았다. 행궁은 동쪽을 향하였고 행궁의 왼쪽으로 오르니 옛날에 낭(廊)이 있었는데 낭의 전후(前後)에 긴 담장이 있고 담장 아래에 길이 있어 서원(西園)으로 올라가니 활을 쏠만한 곳이어서 활을 쏘니 사람이 밟을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땅이 다 거칠고 잡초가 무성하여 상개(爽塏)②하고 유온(幽穩)③함을 알지 못하였다. 한가한 날에 빈좌(賓佐)④와 더불어 활을 쏘다가 갑자기 볼만한 곳이 있어 드디어 그 앞 담장을 헐고 그 낭(廊)을 담장의 끝에 옮기니 낭(廊)이 담장보다 높고 행궁이 더욱 옛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또 그 뒤 담장을 개척하여 북쪽 시냇물의 위에 쌓으니 시냇물과 담장이 같이 동쪽을 향하여 물소리가 더욱 잘 안으로 들렸다. 담장을 등지고 당(堂)을 짓고 서쪽에 누(樓)를 지어 청량(淸凉)함을 우러러보고 동쪽에 청사(廳事)⑤를 지어 성안을 내려다 보고 가운데에 실(室)을 지었다. 당(堂)이 완성되자 누(樓)에 앉고 실(室)에 앉아서 청사(廳事)하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땅이 상개(爽塏)하고 유온(幽穩)한 곳이 이와 같이 좋은 곳을 보지 못하였다 하고 나에게 청하여 이름을 지으라 하므로 내가 좌승당(坐勝堂)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하였더니 모두가 좋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아아 남한산성은 역사에서 말하되 백제의 온조왕(溫祚王)이 도읍(都邑)한 곳으로 서북쪽으로는 뾰족한 산골짜기로 막혔고 한강이 산정(山頂)의 호수(湖水)를 당기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서울을 막고 가리어 하늘이 만든 높은 곳이요, 長子와 같은 가까운 곳이며 잔각(棧閣)⑥처럼 험한 곳이어서 모두 편안히 앉아서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땅이었더니 丙子(1636)年에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습격할 적에 현군(懸軍)⑦이 빨리 쳐들어와 양서(兩西)⑧와 도성(都城)을 유린하고 사흘만에 삼전도(三田渡)⑨를 건너는 것은 어찌 그리 쉬웠던가 우리 군대가 삼전도를 건너 남한산 아래에 가득히 있으면서 자라가 바라만 보는 것처럼 개미가 돌기만 하는 것처럼 하고 40여일 동안을 올라가지 못한 것은 또 어찌 그리 어려웠던가 무릇 내가 이미 이길 수 없는 처지에 앉았고 또 臣民의 많음과 兵力의 온전함으로써 四十여일이나 오래 동안 지휘(指麾)하고 호소(號召)⑩하여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꾀가 되려면 산 아래의 기병(騎兵)들이 그 부중지어(釜中之魚)⑪가 되지 않고서는 편갑(片甲)⑫이라도 돌려줄 수 있겠는가 일이 마침내 능히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다만 이길 수 없는데 편안히 앉아있던 것과 관계가 있으므로 두렵고 두려우며 하나도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꾀가 없는 것은 좌승(坐勝)의 해(害)이니 그 당(堂)의 이름이 마땅치 않은 것 같으나 이미 이길 수 없는 처지에서 스스로 견고하여지는 것으로써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꾀를 삼아 적을 막으면 비록 편안히 앉아 싸우지 않아도 항상 이길 것이니 이것이 그 당을 이름지은 뜻인 것이다. 지금 내가 이 성을 지킴에 또한 그 꾀가 없어도 다행히 성조(聖朝)가 老臣을 관대(寬大)하게 용서하여 그 무능함을 책망하지 않고 아절(牙節)⑭을 영의정의 자리에 앉게 하니 형승(形勝)⑮에서 얻은 것으로 여겨 스스로 만족하고 나라의 태평한 영광을 위하여 당(堂)의 이름을 이것으로써 짓는 바이다.

주(註)
① 행궁(行宮):임금이 임시 머물던 곳.
② 상개(爽塏):높아서 앞이 확 트임.
③ 유온(幽穩):그윽하고 평온함.
④ 빈좌(賓佐):보좌하는 관리.
⑤ 청사(廳事):정사(政事)를 맡아보는 곳.
⑥ 잔각(棧閣):험한 산길에 널빤지를 늘어놓아 선반처럼 만든 길.
⑦ 현군(懸軍):응원군(應援軍)의 후속이 없이 홀로 깊이 쳐들어가는 군대.
⑧ 양서(兩西):평안도와 황해도.
⑨ 삼전도(三田渡):경기도 광주군 한강 연안에 있는 나루. (現 서울 松坡區 石村洞)
⑩ 호소(號召):여러 사람들을 불러서 오게 함.
⑪ 부중지어(釜中之魚):솥 안에 든 물고기, 미구에 죽게 됨을 비유한 말.
⑫ 편갑(片甲):갑옷의 조각
⑬ 성조(聖朝):임금.
⑭ 아절(牙節):절도사 수어사.
⑮ 형승(形勝):地勢가 뛰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