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현령공(휘 민각)묘갈명

영유현령공 휘 민각 묘소
소재지: 전남 곡성군 겸면 남양리(삽정)

묘 표


公姓沈諱民覺字叔先號龜巖靑松府人高麗末文林郞諱洪孚後也三世而左議政定安公諱德符以德行勳業著三世而至忘世亭諱璿以京畿觀察使當 光廟受禪棄官遯跡尙志自靖世所稱 端廟朝名臣士林尙德義  正宗己未建院于玉果之霽洞又三世而至霽湖亭諱光亨以孝行經學本道臣金先生正國狀薦 特除中學訓導醊亨于霽洞書院寔公之曾祖也祖軍資監直長諱錡考嘉善同樞諱彦謙妣貞夫人草溪鄭氏校尉景庬女萬曆己丑正月二十三日生公公在孩提形貌端正神彩英邁及長軆宇雋異氣岸豪爽惟義所在勇往不顧 仁廟甲子适變馳檄擧義召募兵僮九百與雲峰縣監黃一皓左防禦使金完勤 王于公州驛路祗謁鑾輿 仁廟駐輦陣中有嘉爾赴國殉難之聖音因至鞍峴力戰取勝己巳以扈從功特除淸安縣監癸酉除甑山縣監丙子又檄擧義漕運江都保障湖西及聞南漢失守有城下之盟以尊周攘夷之義陳疏斥和遂退歸湖亭垂釣龜岩以龜岩自號示其不出之義辛巳朝廷嘉其忠勳義烈除永柔縣令暫赴旋退崇禎癸未二月十五日考終于家遺命勿用丙子後官爵配淑人南原梁氏父叅奉淨育二男長承議郞之潤次通德郞之浣側生二男長三田渡丞之渲次之漳承議郞生四男三女男長西部主簿世元早卒次世益次世寅次成均生員世日女長梁胤後其子三休攸修次女金溢初系子萬宅次女監役李時煌其子四生進叅奉東道咸平君泓出系監役東夏縣監東賓通德郞生六男長爾杓次爾檣無嗣次世正次成均生員世重次武科司直世雄次世豪曾孫以下並不錄墓玉果縣南面揷亭先考墓下配梁氏雙封艮坐醊享霽洞書院嗚呼逆适之亂乃君父播越之變也以數百義旅疾馳敵愾扈 駕于公州意致回鑾之慶此其非忠孝之所奮發而感應胡汗之亂實華夷倒懸之秋也以尺紙封疎敢言剛直仰達于天陞枚陳春秋之義亦豈非義氣之所凜冽而激揚其所與同倡而赴義如忠烈公黃一皓鶴城君金完瀛原君高弘建副提學愼天翊數賢皆一時碩德也觀公所與之交亦可知志議之所尙也丙子後解官歸鄕垂釣龜岩釣臺上一絲風雖百世之下固可使貧廉懦立有功名敎矣銘曰
孝移而忠奮身赴國斥虜封疏敢言剛直同倡同志有如金黃三邑褒賞墨綬銅章解官垂釣義高風長四尺墳封揷亭之陽一片貞珉百世有光

13세조 영유현령공 휘 민각(民覺) 묘갈명
公의 姓은 沈이요 諱는 민각(民覺)이며 字는 숙선(叔先)이요 號는 구암(龜巖)이며 本貫은 靑松인데 高麗末 文林郞 諱 홍부(洪孚)의 후예(後裔)이다.
公의 9대조 좌의정 정안공(定安公) 諱 덕부(德符)는 덕행훈업(德行勳業)으로 著名하시고 6代祖 망세정(忘世亭) 諱 선(璿)은 京畿觀察使 集賢殿大提學으로 세조수선(世祖受禪)때 벼슬을 버리고 楊州에서 忘世亭을 짓고 餘生을 보내면서 朝廷에서 여러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아니 하셨기 때문에 世上에서 단종조명신(端宗朝名臣)이라고 칭송(稱頌)하고 나라에서 보국영돈녕(輔國領敦寧)을 증직하였으며 士林에서는 그 德義를 존숭(尊崇)하여 정종(正宗) 己未年에 霽洞(立面涒村)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曾祖 제호정(霽湖亭) 諱 광형(光亨)은 孝行經學으로 世上에 널리 알려져 道伯의 추천(推薦)으로 中學訓導에 제수되고 霽洞書院에 配享되셨다. 祖考 휘 기(諱 錡)는 軍資監直長이요 考 휘 언겸(諱 彦謙)은 가선 동추(嘉善 同樞)이시며 妣貞夫人 草溪鄭氏는 교위경방(校尉景尨)의 따님이시다.
公은 宣祖22年(西紀1589年) 己丑 1月23日 출생하셨는데 용모단정(容貌端正)하시고 신채영매(神彩英邁)하시며 문무지의(文武志意)가 강개(慷慨)하셨다.
仁祖2年(西紀1624年) 甲子 이괄란(李适亂)때 의병과 家僮 9百餘名을 이끌고 창기(倡起)하시어 雲峰縣監 황일호(黃一皓)와 좌방어사(左防禦使) 金完과 함께 王을 公州에서 호종(扈從)하시고 안현(鞍峴)에서 力戰 끝에 승리하셨다.
王이 그 功을 포상(褒賞)하시어 己巳年에는 청안현감(淸安縣監)을 癸酉年에는 증산현감(甑山縣監)을 제수하셨다.
仁祖14年 丙子호란(胡亂)때 公은 호서(湖西)에서 다시 義兵을 일으키고 상소(上疏)하여 화친을 반대하셨으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벼슬을 내놓으시고 제동호정(霽洞湖亭)으로 돌아오셔 龜巖에서 낚시를 드리시면서 號를 龜巖이라 하셨다.
仁祖19年 辛巳에 王이 公의 충훈의열(忠勳義烈)이 가상(嘉尙)하시어 영유현령(永柔縣令)을 제수하셨으나 사퇴하시고 유명(遺命)으로 丙子後의 관직을 쓰지 못하도록 당부하셨다.
仁祖21年 癸未 2月15日 本家에서 別世하셨는데 正宗乙未年에 霽洞書院에 配享되셨다. 配位는 淑人南原梁氏인데 叅奉 淨의 따님이시다. 公의 長男 지윤(之潤)은 승의랑(承議郞)이요 次男 지완(之浣)은 通德郞이며 3男 지선(之渲)은 삼전도승(三田渡丞)이요 4男은 지장(之漳)이시다.
外孫 通政大夫 行吏曹叅議 完山 이규헌(李奎憲)이 公의 碑文을 지었는데 時代의 변천(變遷)으로 이를 해득하는 수가 많지 않으므로 後孫으로 하여금 그 행적(行蹟)을 쉽게 바로 알고 추모의 情을 높이도록 하기 위하여 그 主要部分을 의역하였다.
外裔通政大夫行吏曹叅議 完山 李奎憲 謹撰
12代孫 長興郡守 聖植 謹譯
全州後人 止修 李學鏞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