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보 |
故訓鍊奉事沈淸卽令同正六代孫也登武科壬辰之亂以勇武守本府倉穀漕運于東萊五百里之地餉軍不乏後以功除訓鍊奉事乎植九松取後凋之義名亭以碧節此邑誌所在又有所著亂中日記觀其文蹟丁酉島山之戰沈淸金應澤權應心邊仲一率旅防禦於島山之前港衆寡勢絶爲賊丸所中而死其子應洛同爲赴戰收屍於亂骸之中裏革返葬其詳在於金應澤龍蛇日記金璉會盟記而上項冊子各在本家無以倉卒蒐納金應澤邊仲一權應心已蒙旌貤之澤而獨沈淸尙闕褒揚之典云云
읍보 옛 훈련원 봉사 심청(沈淸)은 즉 영동정(令同正)의 6대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에 용감하고 잘 싸움으로써 본부(本府)를 지키고 창곡(倉穀)을 배로 동래 5백리의 땅에 운반하여 군량을 떨어뜨리지 아니하여 뒤에 그 공으로써 훈련원 봉사에 제수되었다. 손수 소나무 아홉 그루를 심어 소나무가 날이 추운 뒤에 시든다는 뜻을 취하였고 정자 이름을 벽절(碧節)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읍지(邑誌) 또는 난중일기에 그 문적(文蹟)이 실려 있다. 정유년 도산에서의 싸움에 심청, 김응택, 권응심, 변중일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산의 앞 항구에서 방어하며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적탄에 맞아 죽으니 그 아들 응락(應洛)이 같이 싸우다가 흩어진 유해(遺骸) 속에서 시체를 찾아 가죽에 쌓아 반장(返葬)하였으니 그 자세한 것은 김응택의 임진일기와 김련의 회맹기에 있으나 위 책자는 각각 본가(本家)에 있으므로 창졸간에 수납(蒐納)하지 못하며 김응택과 변중일, 권응심은 이미 정려를 명 받았으나 유독 심청만 포양(褒揚)의 은전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