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공 (휘 석준)묘표 |
양혜공 휘 석준 묘소 |
묘 비 |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
贈戶曹判書諡良惠公諱石雋墓表
벼슬은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에 자헌대부(資憲大夫:正2品) 호조판서(戶曹判書) 겸(兼)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 벼슬이 증직(贈職)되었고 시호는 양혜공(良惠公)이며, 휘는 석준(石雋)이시다. 생신(生辰)과 졸년(卒年)은 전(傳)해온 기록이 없고 기제(忌祭)는 8월 21일이며 묘소는 경기도(京畿道) 용인군(龍仁郡) 동쪽 포곡면(蒲谷面), 동막동(東幕洞)에 있는 백련암(白蓮菴) 아래 오른쪽으로 자좌오향(子坐午向)에 모셔져 있다. 정부인(貞夫人) 군위 나씨(軍威羅氏)는 삼사우사(三司右使)인 나윤재(羅允材)의 후손이다. 생졸년(生卒年)대는 전(傳)해온 기록이 없고 묘소(墓所)는 공(公)의 묘소(墓所)와 같은 곳에 임좌병향(壬左丙向)으로 모셨는데 앞에는 아버지 묘소(墓所)가 뒤에는 어머니 묘소(墓所)가 있다. 아들 한 분과 딸 한 분을 두셨으니 아들은 망세정공(忘世亭公)이시고, 따님은 진주하씨(晋州河氏) 하제명(河悌明) 좌랑(佐郞)에게 출가하였다. 묘표문(墓表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 묘앞에 비석이 없으니 이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정노(廷老)가 덕은군수(德恩郡守)로 있으면서 비석을 세워 가계(家系)를 기록하였다. 공(公)의 내외(內外) 자손(子孫)이 혁혁(赫赫)하여 이 나라 최고의 씨족(氏族)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공(公)께서 남기신 경사가 아니리오.
서기1700년 숭정재 갑술 후 7년 경진(西紀1700年 崇禎再 甲戌後7年 庚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