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정중건기

불의정공 휘 학 정자
소재지: 전남 곡성군 겸면 대명리


정자(亭子)가 없어진 곳에 다시 亭子를 세워 불의정(不倚亭)이라 현판(懸板)하였으니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保存하기 爲함이요 그 根本을 잊지않기 위해서이다.
이 亭子를 創建하신 분은 靑松沈公 諱 학()이요. 號는 不倚亭이다. 公은 庚申(1680 肅宗6)年 1月 7日 出生하였는데 天稟이 純厚하고 용모(容貌)가 莊重하며 어려서부터 才藝가 초범(超凡)하여 經傳을 한번 보면 외우셨고 學問이 심오(深奧)하여 주서절요 가례심경 근사록 태극설(朱書節要 家禮心經 近思錄 太極設)등 諸書를 貫通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당시세태(當時世態)는 道義가 실추(失墜)되었으므로 名利에 뜻을 끊고 마침내 임하계상(林下溪上)에 집을 지어 중용불편(中庸不偏) 不倚의 뜻을 取하여 不倚亭이라 편액(扁額)하였으니 그 온축(蘊蓄)의 심원(深遠)함과 操守의 올바름을 상상(想像)할 수 있다. 辛未(1751 英祖27)年 10月 13日 享年 72歲에 考終하시니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不倚亭 유고(遺稿)에 序하고 心石 송병순(宋秉珣)은 墓碣銘을 하였다.
朝野의 士林과 後孫은 公의 뜻을 이어 180餘年을 學問修道의 場으로 亭子를 유지관리(維持管理) 해왔으나 庚戌(1910)年 日人强占期에 公의 7代孫 상기(相騎) 義兵을 일으켜 도처(到處)에서 왜병(倭兵)을 격파(擊破)하자 亭子에서 의병활동(義兵活動)의 모의장소(謀議場所)라는 口實로 왜적(倭賊)의 손에 소각(燒却)되는 비운(悲運)을 맞게 되었다.
以後 92年의 歲月이 흘러 後孫들이 誠金을 모아 復元할 것을 合議하고 2002年 6月 28日 着工하여 同年 11月 10日 竣工하였으니 正面三間 側面二間 八作지붕에 辛坐이다.
公의 曾孫 두영(斗永)이 읊은 詩句에 유수고산공만추(流水高山共萬秋)라 하였으니 더욱 아끼고 가꾸어서 영구보존(永久保存)되기를 바라면서 復元事業의 主役인
公의 九代孫 봉식(鳳植)이 德恩 송병순(宋秉珣)이 지은 墓碣銘과 咸安 조성가(趙性家)가 지은 行狀을 提示하면서 불녕(不佞)에게 重建記文을 請함으로 固辭하지 못하고 敢히 졸문약술(拙文畧述)하다.
壬午 西紀2002年 仲冬節
族後孫 愚慶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