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재 사적

 

경모재 (김해부사공 휘 광헌 재각)
소재지: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본촌 206-5



무등산서(無等山西) 50里 본양방(本良坊)에 太白의 雄氣가 연맥(聯脈)하여 용진산(聳珍山) 靈峰에 精氣를 結集시켜 개국(開局)한 湖南의 大明堂인 만월괘서혈(滿月掛西穴)이 있으니 바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金海府使에 諱는 광헌(光憲)이요 字는 언장(彦章) 號는 삼암(三巖)의 유택(幽宅)이요 그 계하(階下)에 묘각(墓閣)이 있으니 재호(齋號)는 경모(敬慕)라 沈氏가 靑松에 발상(發祥)하야 高麗 문림랑위위시승(文林郞衛尉寺丞) 諱 홍부(洪孚)를 始祖로 하니 公의 9代祖요 고휘(考諱)는 풍()이니 號는 묵헌(默軒)이라 成宗 13年 壬寅生으로 이조정랑(吏曹正郞)에 이르러 當年 38歲時 己卯사화(士禍)에 조정암(趙靜庵)先生을 구명상소(救命上訴)타 철산(鐵山)에 流配된 후 羅州에 定住하게 된 己卯명현(名賢)으로 동호사(東湖祠)에 향사(享祀)하다. 公이 中宗 36年 西紀1541年 辛丑生으로 천자(天姿)가 卓越하고 기우(器宇)가 홍의(弘毅)하여 學德을 兼備하야 임사(臨事)에 忠直하여 士林이 推重하였다. 조년(早年)에 무과(武科)에 及第하야 훈련주부(訓鍊主簿)를 歷任한 후 壬辰年에 왜적(倭敵)이 侵入하야 우리 강토(疆土)를 짓밟음에 國恩을 입은 家門의 후예(後裔)로 적개충심(敵愾忠心)이 强하여 公의 나이 52歲임에도 宗廟의 危急함을 重視하고 정예수천(精銳數千)을 募兵하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막하(李舜臣幕下)로 들어가 옥포전(玉浦戰)에서 적선(賊船)30隻을 擊破한 後 固城 다월포(多月浦)로 가서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최철견(崔鐵堅)과 힘을 합쳐 防禦陣을 構築하였으며 노량전(露梁戰)에 參戰하야 패주적병(敗走敵兵)들을 사천(泗川)까지 追擊하여 敵船十餘隻을 擊破하고 이어서 점포한산도안골포(店浦閑山島安骨浦) 海戰에서도 많은 戰功을 세운 후에 분진(分陳)을 이끌고 江陵에 當到하니 明將 송대빈(宋大斌)이 倭敵에게 包圍되어 苦戰함을 보고 卽時 攻擊하여 倭敵을 討伐하고 명장(明將)을 사지(死地)에서 救出하였다.
이에 明將 송대빈(宋大斌)이 조정(朝廷)에 장계(狀啓)하야 萬一 沈將軍의 救援이 없었더라면 敵鋒에 명군(明軍)이 全滅을 免치 못했으리라 하니 宣祖가 公의 戰功을 嘉尙하여 특제김해부사(特除金海府使)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훈봉(勳封)하였음이 壬辰錄과 나주읍지(羅州邑誌)에 事載되어 있으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찬(撰)의 墓碣에도 상기(詳記)하였고 公의 忠志를 追慕하고자 향천(鄕薦)으로 동호사(東湖祠)에 享祀하다. 靑松沈氏는 경락(京洛)의 화족(華族)으로 歷代의 많은 忠臣과 烈士를 輩出한 後裔답게 墓道에 따라 1918年 戊午春季에 정랑공(正郞公)門中의 종의(宗議)에 依하야 묘각창건사업(墓閣쾍建事業)을 推進키 爲한 任員을 추정(薦定)하니 도유사(都有司)에 종대(鍾大)요 유사(有司)에 相文 遠玉 鍾彦 鍾玉 鍾秀 遠和 樂興 樂奎의 주재(主宰)로 全 子孫들의 物心兩面의 誠金으로서 齋閣을 창건(刱建)하야 숭조보본(崇祖報本)의 道理로 敬先하고 경친우공(敬親友恭)의 情으로 목족공영(睦族共榮)의 義理를 돈독(敦篤)하여 聖域保存에 힘써 오던 次에
刱建 年久歲深하야 개와(改瓦)가 破損되고 표색(表色)이 변모(變貌)하니 宗會長 영구(永求)의 發議로 1984年 12月2日에 종의(宗議)에 依하야 淨化委員會가 發足되어 京鄕各地의 後孫들의 誠金이 답지(遝至)하여 墓域을 淨化하고 재사(齋舍)를 개와(蓋瓦) 및 도장보수(塗裝補修)한 後 불녕(不佞)에게 記文을 請託하기에 그 實錄을 보니 온겨레의 사표(師表)가 될 府使公의 구국충정(救國衷情)에 感歎하고 숭조효제(崇祖孝悌)를 家訓으로 先代를 이어서 奉仕하는 신구아형(信求雅兄)의 至極한 위선성심(爲先誠心)으로 平素에 羨望한지라 公의 行蹟을 사기(寫記)하고
이에 명(銘)하노니
인의(仁義)는 천지(天地)의 대경(大經)이요 충(忠)과 효(孝)는 古家의 典型이라
公의 구국투혼(救國鬪魂)에 依한 勳功은 日月과 함께 천추(千秋)에 빛날 것이요
선현(先賢)의 유방(遺芳)과 蔭德이 聖域과 함께 永遠하리라.

1991年 辛未 7月
咸平 李啓國 謹撰(幷)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