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재


晩翠齋 全景
소재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330번지 (別廟는 世德祠)



世 德 祠 記

古禮에 先祖의 位牌를 祠堂에 모시고 享禮를 올리는 것이 後孫의 道理이다. 丹城 默谷의 靑松沈氏는 高麗 末에 典理判書를 歷任한 岳隱公 諱 元苻의 後孫으로서, 朝鮮朝 開國 時 岳隱公이 杜門洞에 들어가 殉節하신 以後로, 近 八代에 이르도록 先祖의 墓所를 失傳하는 隱遁의 삶을 살아왔다.
1700年代에 이르러 崇祖 穆宗하는 道理를 生覺해 先塋을 찾으려 努力하였으나 當時의 時代的 狀況을 미루어 볼 때 舊譜에 실린 通津 馬松里나 坡州, 果川, 高陽, 昌原 등을 轉傳하며 隱遁하신 先祖의 墓所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先塋을 보존치 못한 悚懼함에 時祭마져 闕祀하는 不孝를 勘當할 수 없어 宗議를 거쳐 屢代 顯祖의 祠宇를 마련하여 羹墻之誠을 다해 왔으니 곧 世德祠이다.

奉安位는 判事公 諱 襲과 吏曹判書公 諱 後刪과 禮曹參判公 諱 副曾 禮曹參判公 諱 濬과 監察公 諱 宗湖와 主簿公 諱 自春이다. 位版을 石材로 한 것과 配位를 倂享한 것은 後孫의 追慕之心이 甚切함을 나타낸 것으로 時流의 變遷에 따른 現像이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
登載된 官職은, 宗派(諱 德苻)에서 朝鮮朝 開國에 合心하여 三王后와 三代政丞 등 十三相臣을 累代에 걸쳐 歷任하면서, 벼슬을 薦擧하여 敎旨를 내렸기 때문이다.

百數十년 前에 刊行된 大同譜에 敎旨를 받은 官職이 그대로 記錄되어 있어, 數百年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先祖들의 行蹟을 族譜에 依할수 밖에 없어 舊譜대로 하였다.
先祖들이 베푸신 恩德을 生覺 할 때 雨露가 大地를 적시고 霜露가 萬象을 덮으면 追慕之心이 油然히 일어남이 어찌 後孫들의 衷心이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先祖의 偉德을 받들어 永遠히 모실 것을 다짐하며 간단한 事實을 적는다.

1998年 戊寅 3月 日
判事公 17世孫 成均館 典儀  東燮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