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아산현)

〈선생안(先生案)〉
심광세(沈光世) 심필현(沈弼賢) 심  전(沈  鋑) 침능악(沈能岳) 심원상(沈源相)
심시현(沈時顯):무겸(武兼)
심 눌(沈 訥):군수(郡守)
심양지(沈養之):거사비(去思碑)가 있다.
〈효자(孝子)〉
심서웅(沈瑞雄):안효공 온(安孝公 溫)의 후손(後孫)이요 남면석우(南面石隅)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동(孝童)이라 일컬어졌고 아버지의 병환(病患)에 꿩고기와 물고기가 먹고싶다 하여 그것을 구하려다가 꿩이 집으로 날라 들어오고 붕어가 다리로 뛰어 오르는 기이(奇異)한 일이 있어 한 고을에서 여러 번 암행어사에게 글을 올렸고 숙종조(肅宗朝) 癸巳년에 급복(給復:세금과 부역을 면제함)을 命 받았다.
심정노(沈廷老):만사상공(晩沙相公) 지원(之源)의 손자(孫子)요 부사 익선(府使 益善)의 아들이다. 서울로부터 처음으로 읍촌(邑村)에 와서 살았고 벼슬은 군수(郡守)였으며 그 증손 경영(曾孫 景永)이 대동(大東)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심락연(沈樂演):정언 전(正言 )의 증손(曾孫)이요 대동(大東)으로 와서 살았다.
심공간(沈公榦):홍문제학 동구(弘文提學 東龜)의 오세손(5世孫)이요 금곡(金谷)에 와서 살았다.
심  환(沈  渙):字는 합여(合汝)요 號는 천재(泉齋)며 참봉 원공(參奉 元恭)의 아들이다. 宣祖 辛卯年에 동지(同志)와 더불어 청송사(靑松寺)에 놀러가서 요성(妖星)을 보고 미리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날 것을 알고 수백석(數百石)의 곡식을 거두어 모아 미리 위험함을 방비하더니 급기야 난리가 일어나자 함월산중(含月山中)에 진(陣)을 치고 여러 번 전공(戰功)을 세웠으나 난리가 평정됨에 功을 사양하고 여천(麗泉)에 숨어 살았고 벼슬은 울산교수(蔚山敎授)였다.
심 씨(沈 氏):본관(本貫)은 청송(靑松)이요 상언(尙彦)의 딸이며 풍천 임도갑(豊川 任道甲)의 아내로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하루를 더 살게 하고 喪을 당하자 남편 따라 죽을 것을 맹세했으나 시부모를 봉양할 사람 없고 유복자(遺腹子)가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종신(終身)토록 흰옷을 입고 살았다.
심규학(沈奎學):字는 봉거(鳳擧)요 號는 태호(台湖)며 한충(漢忠)의 후손(後孫)으로 재치가 있고 영민(英敏)하며 문장(文章)과 사구(辭句)가 일찍 성취(成就)되어 악육재(樂育齋)에 뽑혔다.
심상구(沈尙求):字는 문우(文佑)요 환(渙)의 후손(後孫)이며 효우(孝友)의 행실(行實)이 온전하고 시서(詩書)에 전업(專業)하여 이국려 석선(李菊廬 錫先)의 門에서 배웠다.
심 황(沈 榥):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심 탁(沈 鐸):음직(蔭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