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천안군)

〈명관(名官)〉
심대복(沈大復):통정(通政)이였다.
심 혁(沈  ):정선군수(旌善郡守)를 지내셨다.
심정화(沈廷和):가선대부(嘉善大夫) 청성군(靑城君)에 봉군(封君)되었다.
심익상(沈益相):밀양부사(密陽府使)로 승진(陞進)하였다.
심 희(沈 禧)
심인겸(沈仁謙):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여 온양군수(溫陽郡守)를 지내셨다.
심한기(沈漢紀):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심덕순(沈德淳):벼슬이 중추(中樞)였다.
심사징(沈思澂):봉사(奉事)의 후손(後孫)과 참의공(參議公)의 후손(後孫)으로 모두 대사동(大寺洞)에서 산다.
〈우거(寓居)〉
심노숭(沈魯崇):고을 사람의 자제(子弟)에게 학문(學問)을 勸하고 교궁(校宮)에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심 석(沈 錫):여러 대동안 벼슬이 끊이지 않는 빛나는 문벌(門閥)로 그 모습이 근신(謹愼)하고 후덕(厚德)하였으며 사우(士友)들과 같이 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스스로 즐겼다.
심사홍(沈思泓):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의 후손(後孫)이요 부제학(副提學) 세정(世鼎)의 아들이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하고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은 이조참의(吏曹參議)요 처음으로 소동대사동(小東大寺洞)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