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과읍지(곡성)

〈선생안(先生案)〉 현감(縣監)
심 엄(沈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음직(蔭職)으로 丙午 12月 27日에 도임(到任)하여 己酉 正月에 사임하였다.
심정의(沈廷儀):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乙丑 8月 27日에 도임(到任), 庚午 8月 만기로 사임하였다.
심일진(沈一鎭):丙子 10月 20日에 도임(到任)하여 己卯 5月 28日 흡곡현령(歙谷縣令)으로 이배(移拜)되었다.
심공권(沈公權):음직(蔭職)으로 庚申 8月 18日 제배(除拜)되어 同月 29日 도임(到任)하여 甲子 6月 23日에 사임하였다.
〈음사(蔭仕)〉
심 순(沈 淳):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다.
심광원(沈光元):순(淳)의 子로 부장(部將)이다.
심광형(沈光亨):광원(光元)의 弟로 훈도(訓導)이다.
심광정(沈光貞):광형(光亨)의 弟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심 기(沈 錡):광형(光亨)의 子로 직장(直長)이다.
심 종(沈 鍾):기(錡)의 弟로 참봉(參奉)이다.
심 정(沈 鉦):종(鍾)의 弟로 직장(直長)이다.
심화겸(沈和謙):종(鍾)의 子로 부장(部將)이다.
심명겸(沈明謙):화겸(和謙)의 弟로 주부(主簿)다.
심민겸(沈敏謙):주부(主簿)다.
심민헌(沈民獻):선무랑(宣武郞)이다.
심민각(沈民覺):현감(縣監)이다.
심민의(沈民義):통정(通政)이다.
심원철(沈元哲):부장(部將)이다.
심지호(沈之灝):통정(通政)이다.
심지철(沈之澈):승의랑(承議郞)이다.
심지윤(沈之潤):승의랑(承議郞)이다.
심사영(沈思泳):첨정(僉正)이다.
심세원(沈世元):지윤(之潤)의 子로 주부(主簿)다.
심세발(沈世發):홍제(弘濟)의 子로 한성좌윤(漢城左尹)이다.
심세현(沈世賢):첨정(僉正)이다.
심세명(沈世明):세형(世亨)의 弟로 가의(嘉義)이다.
심민의(沈民義):광정(光貞)의 증손으로 통정(通政)이다.
심노태(沈魯泰):락린(樂麟)의 질(姪)로 참봉(參奉)이다.
심종택(沈宗澤):참봉(參奉)이다.
심준택(沈俊澤):참봉(參奉)이다.
〈신증, 음사(新增, 蔭仕)〉
심운택(沈雲澤):망세정(忘世亭) 선(璿)의 후손(後孫)이요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다.
심정택(沈晶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제능참봉(齊陵參奉)이다.
심노운(沈魯云):선(璿)의 후손(後孫)이요 통사랑(通仕郞) 영능참봉(英陵參奉)이다.
심윤택(沈胤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정능참봉(靖陵參奉)이다.
심종택(沈宗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윤택(胤澤)의 弟고 숭능참봉(崇陵參奉)이다.
심붕택(沈鵬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정능참봉(貞陵參奉)이다.
심승택(沈勝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현능참봉(顯陵參奉)이다.
심한택(沈漢澤):선(璿)의 후손(後孫)이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다.
심노윤(沈魯允):선(璿)의 후손(後孫)이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다.
〈수직(壽職)〉
심노경(沈魯卿):락성(樂聖)의 子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증직(贈職)〉
심지호(沈之灝):민희(民熙)의 子로 통정(通政)이다.
심의경(沈義卿):정(鉦)의 孫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이다.
심민백(沈民伯):선(璿)의 후손으로 가선(嘉善)이다.
심홍제(沈弘濟):의경(義卿)의 子로 판결사(判決事)이다.
심세연(沈世連):화겸(和謙)의 증손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이다.
심  열(沈  悅):선(璿)의 후손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심세형(沈世亨):원철(元哲)의 孫으로 가의(嘉義)이다.
심주초(沈柱礎):민겸(敏謙)의 현손(玄孫)으로 통정(通政)이다.
심사명(沈師明):선(璿)의 후손으로 가선(嘉善)이다.
심사희(沈師熙):세웅(世雄)의 孫으로 동지(同知)이다.
심사우(沈師禹):지완(之浣)의 증손으로 통정(通政)이다.
심사설(沈師卨):사우(師禹)의 弟로 통정(通政)이다.
심사익(沈師益):지철(之澈)의 증손으로 장락원정(掌樂院正)이다.
심규진(沈圭鎭):사익(師益)의 子로 이조참의(吏曹參議)이다.
심제진(沈悌鎭):지섭(之涉)의 현손(玄孫)으로 통정(通政)이다.
심상영(沈相永):규진(圭鎭)의 子로 이조참판(吏曹參判)이다.
심락린(沈樂麟):상영(相永)의 子로 가선(嘉善)이다.
심능훈(沈能勳):민각(民覺)의 7世孫으로 부호군(副護軍)이다.
심락선(沈樂善):사희(師熙)의 孫으로 부호군(副護軍)이다.
심락한(沈樂漢):지철(之澈)의 6世孫으로 통정(通政)이다.
〈신증, 증직(新增, 贈職)〉
심귀영(沈貴永):선(璿)의 후손(後孫)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다.
심락용(沈樂溶):선(璿)의 후손(後孫)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다.
〈학행(學行)〉
심광형(沈光亨):천자(天姿)가 탁월(卓越)하여 10歲에 육경(六經)을 통독(通讀)하니 사재 김광국(思齋 金光國)의 장문(狀聞)에 이르기를 효도는 증자(曾子)를 이어받았고 학문은 주자(朱子)를 좇았다 하니 특별히 훈도(訓導)를 임명하였고 강호(江湖)의 승경(勝景)처를 취하여 정자를 짓고 함허(涵虛)라 이름하여 거닐며 스스로를 즐겼고 구암사(龜巖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심윤택(沈胤澤):천질(天質)이 관후(寬厚)하고 천학(踐學)에 충실하는 것을 늙도록 게을리 하지 않고 재리(財利)에 임하여는 나는 손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여 덕이 흡족하였다.
〈문행(文行)〉
심정택(沈晶澤):천성이 총명하고 학문이 심오하며 효우(孝友)가 독실하고 린리(隣里)를 구휼(救恤)하니 본졸 이만익(本倅 李萬翼)이 그 집에 가서 늘 민사(民事)를 물었고 벼슬은 참봉이다.
〈충의(忠義)〉
침민겸(沈敏謙):임신왜란(壬辰倭亂)에 의병(義兵)을 모집(募集)하여 원수 권률(元帥 權慄)을 따라 수원(水原)에 주둔하고 식량(食糧)을 운반(運搬)함이 끊이지 아니하여 주부(主簿)에 임명(任命)되었고 갑자괄란(甲子适亂)에 주부(主簿) 홍우익(洪友益) 等과 더불어 창의(倡義)하고 공주(公州)로 향(向)하다가 적(賊)이 평정(平定)되어 그만두었고 사당(祠堂)에 배향(配享)되었다.
〈행의(行誼)〉
심일해(沈一海0:담용(膽勇)이 뛰어났고 일찍 정훈(庭訓)을 받고 운암 이흥발(雲巖 李興浡)의 門에 취학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탑전(榻前)에서 모셔 은우(恩遇)를 받았으나 사양하고 전리(田里)에 돌아와 금서(琴書)를 스스로 즐겼다.
〈문망(聞望)〉
심주천(沈柱天):세인(世寅)의 子로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럽더니 장성하여 태극리기(太極理氣) 사잠(四箴) 동서명(東西銘) 여러 서적을 강구하지 않음이 없고 더욱 힘쓰니 향리의 자랑이었다.
〈효행(孝行)〉
심상록(沈相錄):선(璿)의 후손으로 천성(天性)이 온화하여 집이 지극히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섬기는데 품 팔고 힘써 농사지어 정성껏 모셨고 아버지가 평일에 술을 좋아하므로 나무를 하여 팔어서 술값을 드리고 혹은 시정(市井)에서 짐을 날라준 삯으로 반찬을 사다 드렸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곡읍(哭泣)하는 슬픔과 송종(送終)하는 절차를 능히 고례(古禮)를 준수하였다. 얼마 안되어 어머니 상을 당함에 초종(初終) 상제(喪祭)를 한결같이 전상(前喪)과 같이하여 면상(面賞)이 있었고 또 향장(鄕狀)이 있었다.
심능기(沈能基):어려서부터 예의(禮儀) 범절이 뛰어나 어머니가 밥을 먹지 않으면 젖을 먹지 않고 아버지가 일을 하면 말렸으며 초상을 당하여는 한결같이 예제(禮制)를 준수하였고 여러 번 향도천(鄕道薦)에 올랐으며 통정(通政)에 추증되었다.
〈열녀(烈女)〉
심 씨(沈 氏):연안 이영복(延安 李永福)의 처로 효성으로 구고(舅姑)를 봉양하였고 부병(夫病)에 단지주혈하여 회소(回甦)시켰고 돌아가자 즉시 하종(下從)코자 하였으나 유고(幼孤)가 포대기에 있으므로 그러지 못하고 상장(喪葬)에 진례(盡禮)하니 향리가 흠탄(欽歎)하였다.
김 씨(金 氏):심노련(沈魯連)의 처로 부병(夫病)에 재삼 작지주혈(斫指注血)하여 수일을 연명하니 린리(隣里)에서 그 열행(烈行)을 칭송하였다.
〈효부(孝婦)〉
심 씨(沈 氏):김종원(金宗源)의 처로 자유(自幼)로 효사부모(孝事父母)하였고 출가하여 구고(舅姑)봉양하는 것을 禮로써 하고 일찍 남편을 여의고 편고(偏姑) 崔氏가 늙고 병들자 대소변을 친히 받았고 간호함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이와 같이 한지 수년에 돌아가자 송종(送終)을 예대로 하여 어사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선행(善行)〉
심윤택(沈胤澤):송병선(宋秉璿)의 문인(門人)으로 성품이 관후(寬厚)하고 근검하며 율신어가(律身御家)에 반드시 법도가 있었고 항상 중용을 읽어 늙도록 게을리 하지 않으며 세를 받을 때 헐가로 받으며 외상으로 준 쌀은 반드시 떨어진 값으로 받고 줄 때는 되를 후하게 주고 오처(五處)에 비(碑)를 세우며 문묘(文廟)에 의연금(義捐金)을 사사로 많이 바치고 후덕(厚德)하고 선행(善行)을 하니 세상에서 추중(推重)을 받았다.
〈명묘(名墓)〉
심광형(沈光亨):墓, 邑의 南쪽 10里 개사동 축좌(介寺洞 丑坐)에 있다.
심언겸(沈彦謙):墓, 현남(縣南) 10里 삽정 간좌(揷亭 艮坐)에 있다.
심청진(沈靑鎭):墓, 현동(縣東) 30里 곡촌 동록 병좌(谷村 東麓 丙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