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지, 함평현

〈읍선생(邑先生)〉 현감(縣監)
심 박(沈 樸):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심 방(沈 枋):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동지사(冬至使)로써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었다.
심우량(沈遇良):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심 석(沈 錫):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문과(文科)〉
심희무(沈希武):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찰방(察訪)이다.
〈음사(蔭仕)〉
심인상(沈仁相):예조판서(禮曹判書)다.
심능오(沈能五):호조참판(戶曹參判0이다.
심의종(沈宜宗):참봉(參奉)이다.
심면택(沈冕澤):동몽교관(童蒙敎官)이다.
심의규(沈宜珪):도정(都正)이다.
심의일(沈宜一):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심민택(沈玟澤):감찰(監察)이다.
심윤택(沈允澤):동몽교관(童蒙敎官)이다.
심우택(沈又澤):감찰(監察)이다.
심훈택(沈勳澤):감역(監役)이다.
심기홍(沈棋洪):참봉(參奉)이다.
심의수(沈宜守):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심의종(沈宜琮):감역(監役)이다.
〈가자(加資)〉
심일상(沈一相):통정(通政)이다.
심기상(沈基相):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심형규(沈亨奎):가선(嘉善)이다.
심두상(沈斗相):부호군(副護軍)이다.
〈증직(贈職)〉
심열상(沈悅相):좌승지(左承旨)이다.
심도진(沈道鎭):가선 호조참판(嘉善 戶曹參判)이다.
심능천(沈能千):이조참의(吏曹參議)이다.
심능건(沈能建):예조참판(禮曹參判)이다.
심의영(沈宜榮):가선(嘉善)이다.
심의종(沈宜琮):가선(嘉善)이다.
심의근(沈宜根):자헌(資憲)이다.
심의영(沈宜榮):도정(都正)이다.
심영상(沈榮相):감찰(監察)이다.
심의감(沈宜鑑):호조참판(戶曹參判)이다.
심홍진(沈弘鎭):승지(承旨)이다.
심안상(沈安相):이조참의(吏曹參議)이다.
심능원(沈能源):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심능오(沈能五):참의(參議)이다.
〈사마(司馬)〉
심봉서(沈鳳瑞):생원(生員)이다.
〈행의(行誼)〉
심 서(沈  曙):율곡 이이(栗谷 李珥)에게 종유(從遊)하여 학행(學行)이 독실하고 지조(志操)가 단결(端潔)하며 문달(聞達)을 구하지 않고 임천(林泉)에 자취를 감추었고 유고(遺稿)가 있다.
심원규(沈元奎):지조(志操)와 절개(節介)가 굳고 확실(確實)하며 도량과 재간이 월등하게 뛰어나 일찍 과거를 볼 것을 사절하고 만년(晩年)에 성리학(性理學)에 독실하여 세상의 사표(師表)가 되었고 문집(文集)이 있다.
심능문(沈能文):지조(志操)가 청검(淸儉)하고 학문이 굉박(宏博)하며 성리학(性理學)에 전심하고 자취를 임번(林樊)에 감추어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즐기니 세상이 추중(推重)하였다.
심인상(沈仁相):서제를 만들어 독서하며 거닐었고 스스로를 즐겼다.
심언영(沈彦英):수신근행(修身謹行)하고 평심솔물(平心率物)하며 시대의 현회(顯晦)를 알아 군배(群輩)와 어울리지 않았다.
〈문행(文行)〉
심언영(沈彦永):천자(天姿)가 탁이(卓異)하고 문장이 일찍 성취되었으며 독서 10年에 궁리수신(窮理修身)하여 출세할 때와 불출세(不出世)할 때를 알고 자취를 운림(雲林)에 감추어 산수(山水)를 스스로 즐겼다.
심의종(沈宜宗):천자고명(天資高明)하고 재조가 뛰어났으며 문장이 일찍 성취되어 더욱 사부(詞賦)에 능하였고 후학을 교도하여 사림(士林)의 긍식(矜式)이 되었고 유고(遺稿)가 있다.
심의정(沈宜正):동해김훈(東海金勳)의 門에 종유하였고 품질(稟質)이 정직하고 효우(孝友)가 독실하여 시례(詩禮)를 탐구하며 스스로 즐겁게 지냈다.
〈충의(忠義)〉
심수택(沈守澤):丙午에 창의(倡義)하였고 戊申에 순절하였다.
〈효행(孝行)〉
심유대(沈有大):천성(天性)으로 지극히 효도하여 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섬겼고 하나라도 맛이 있는 음식을 얻으면 먼저 입에 넣지 않았으며 부모 뜻에 순종하고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지나쳤고 삼년 동안 소식(素食)을 하였다.
심제상(沈悌相):친환(親患)에 부모가 생어(生魚)를 엄동에 원하자 얼음을 깨고 구하여 인삼과 같이 달여 드리니 향천(鄕薦)에 오르고 교관(敎官)에 임명되었다.
심일상(沈一相):덕성(德性)이 어질고 효성(孝誠)스러워 부모(父母)의 뜻을 어기지 않았고 상중(喪中)에 있을 적에는 질대(絰帶)를 벗지 않았으며 조석(朝夕)으로 생묘(省墓)함에 항상 호랑이가 호위(護衛)하여 향천(鄕薦)에 올랐다.
심능략(沈能畧):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섬겼다. 항상 아버지를 봉양(奉養)하지 못한 것으로써 恨을 삼고 매일(每日) 생묘(省墓)하니 그 洞을 이름하여 효자동(孝子洞)이라 하였고 모병(母病)에 청채(菁菜)를 원(願)하므로 캐어다 드려 그 등(嶝)을 이름하여 청생등(菁生嶝)이라 하였다.
심의준(沈宜俊):천성(天性)이 지효(至孝)하여 부모(父母)의 뜻을 거스리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飮食)을 떨어뜨리지 않았으며 부모(父母)의 喪을 당하여 륙년간(六年間)을 시묘(侍墓)살이 하니 호랑이가 와서 호위(護衛)하였고 무릎이 닿은곳이 구덩이가 되었고 눈물이 떨어진 곳의 풀이 말라 죽으니 도백(道伯)과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천장(薦狀)을 올려 교관(敎官)에 추증(追贈)되었고 호세(戶稅)와 부역(賦役)이 면제(免除)되었다.
 
〈열행(烈行)〉
심  씨(沈  氏):함평 노복렬(咸平 魯福烈)의 처로 부병(夫病)에 단지주혈(斷指注血)하고 종신토록 빗질을 않았다.
심  씨(沈  氏):풍산 홍승백(豊山 洪承伯)의 처로 부병(夫病)에 하늘에 빌어 대신 죽기를 원하였고 위독하자 단지주혈(斷指注血)하여 일일(一日)의 命을 연장하였고 상을 당함에 슬퍼함이 지나쳤으며 향리(鄕里)에서 흠송(欽頌)하여 향천(鄕薦)에 올랐다.
심  씨(沈  氏):이천 서해기(利川 徐海麒)의 妻로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부병(夫病)에 수월 동안 지성으로 구호하였으며 병이 위독하자 단지주혈하여 三日동안 회소(回甦)하였고 거상(居喪)에 예제를 다하였고 三年동안 소식(素食)을 하였다.
심  씨(沈  氏):광산 김규철(光山 金珪哲)의 처로 남편이 죽자 따라 죽을 것을 맹세 하였으나 구고(舅姑)의 만류로 억지로 참고 듣고 쫓아 집상삼년(執喪三年)에 예를 다하고 아들을 길러 가도를 부지하였다.
〈총묘(塚墓)〉
심안평(沈安枰):신광면(新光面) 산정촌후(山亭村後) 술좌(戌坐) 쌍영(雙塋)이요 석물(石物)과 재각(齋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