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죽청정(石竹蜻蜓: 패랭이꽃과 잠자리)

패랭이꽃을 한자어로 석죽(石竹)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중국 어느 곳에 나쁜 돌의 신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소문을 들은 한 장사가 용감히 나섰다. 장사는 산으로 올라가서 그 신이 살고 있다는 돌에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은 돌에 박혀서 빠지지를 않았다. 이듬해 화살이 박힌 돌에서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고운 꽃이 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석(石), 대나무 죽(竹)을 써서 "석죽(石竹)"이라고 했다고 한다. 패랭이꽃을 다른 이름으로 낙양화(洛陽花)라고도 하는데, 『 개자원화전』에는 낙양화의 이름으로 실려 있다.

화면 중심에는 남근석(男根石) 모양의 바위가 힘차게 우뚝 솟구쳐 있고 바위 정상부에는 국화점으로 표현된 연초록색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있다. 바위 모습은 부드러운 갈필을 여러 번 그어 댄 피마준(披麻皴)으로 표현하였는데, 군데군데 엷은 황색과 녹색으로 물들여 질감을 살렸다. 앞서의 기괴한 바위와는 다르게 안정감 있고 친숙한 바위로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바위 뒤로는 패랭이 꽃밭이 펼쳐졌는데, 오른쪽으로 줄기가 벋은 패랭이꽃 위에는 잠자리 한 마리가 가뿐한 몸짓으로 앉아 있다. 바위 위로 올라간 패랭이꽃은 키를 달리하여 모두 다섯 송이가 피어 있고, 바위 앞에는 국화점이나 호초점으로 풀들을 표현하여 이 풀들이 바위를 에워싸게 했다. 기괴하지 않은 친근한 바위와 예쁜 패랭이꽃 그리고 산뜻한 잠자리가 잘 어울린 소담한 초충도이다.

바위 안에 "현(玄)","재(齋)"라는 백문인장을 찍었고, "현재거사(玄齋居士)"라는 백문인장을 한 번 더 찍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