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금문향(水禽聞香: 물새가 향기를 맡다)

비취(翡翠)빛 머리털과 날개 깃을 자랑하는 물총새 즉 비취새 한 마리가 연꽃 줄기를 타고 앉아 그 아래에서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는 연꽃으로부터 그윽한 청향(淸香)을 마시고 있다. 물총새는 제 몸무게 때문에 휘청대는 연꽃대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머리를 뒤틀어 연꽃을 바라보며 부리를 넉넉하게 벌리고 있다.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토해내는 맑고 그윽한 향기를 정신없이 마시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두 발은 힘주어 연꽃대를 움켜쥐었는데 물총새가 타고 앉아 널뛰는 바람에 묵은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졌던 듯 연밥 주변으로는 달랑 연꽃잎 두 장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막 피어나는 탐스런 연꽃과는 대조적인 표현이다. 늙은 꽃대를 상징하듯 가시가 억세게 드러나 있다. 연꽃은 끝부분만 붉은 점이 박힌 홍점(紅點) 백련(白蓮)인 듯 끝 부분에만 연지(臙脂)빛과 주황으로 붉게 점찍어 놓았다. 물총새의 아래턱과 가슴과 배도 연지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그밖에 새로 돋아나는 연잎(荷葉)과 수초(水草)에 옥색 나는 비취빛을 조금씩 칠했을 뿐 나머지는 대담하게 수묵(水墨)으로만 처리하고 말았다. 여름내 묵어서 세어지고 비바람에 찢긴 패하(敗荷: 늙은 연잎)의 억세고 강인한 모습이 신속하고 거침없는 묵찰법(墨擦法: 먹을 급하게 쓸어내리는 법)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그림 전체에서 농익은 화상(畵想: 그림에 대한 구상)과 신속하고 익숙한 필치를 감지할 수 있으니 현재가 환갑 넘어서 그려낸 만년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인장도 큼직하게 찍는 대담성을 보였다. "심씨이숙(沈氏頤叔)"이라는 내용이다. 성씨와 자(字)를 방형주문(方形朱文: 네모진 형태의 붉은 글씨)으로 새긴 인장이다. (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