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파주(禽欲破珠: 새가 열매를 따려고 하다)

이 그림은 묵죽화와 화조화가 합쳐진 그림이다. 먼저 화면 왼쪽 아래 모서리에서 한 떨기의 대숲을 담묵과 농묵으로 표현해 놓았다. 키 큰 고죽의 줄기는 화면 위까지 길게 솟아 올라가 있고 새로 자라나는 어린 대의 줄기는 가로로 길게 벋어 나갔다. 고죽(枯竹)은 담묵(淡墨)으로 신죽(新竹)은 농묵(濃墨)으로 처리한 듯하다. 여기까지는 묵죽으로 그려냈고, 다음부터는 담채를 사용하여 화조화를 그렸다.

대숲 약간 오른쪽 끝에서 산사자(山査子)나무인 듯한 큰 고목나무 한 그루가 솟아 올랐다. 두 개의 굵은 줄기가 서로 어긋나게 올라갔는데 왼쪽으로 꺾인 줄기는 대숲 위에서 멈추었고, 오른쪽으로 꺾인 줄기는 자연스레 휘면서 대각선으로 벋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붉고 둥근 열매는 많지만 적지도 않게 적절하게 달려 있고, 잎들 또한 농담의 변화가 산뜻하면서 깔끔한데, 단풍이 물들어가는 잎새들에서 녹색이 주황으로 바뀌는 것을 자연스럽게 잘 처리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가 잘 되었다. 배와 머리 부분은 아주 엷게 먹을 썼고 날개와 꼬리 부분은 진한 먹으로 가볍게 쳐내었다. 날개깃 사이에 푸른색을 넣어 아름답게 꾸몄고, 눈과 부리는 야무진 모습이다. 아마도 저 앞에 놓여있는 먹이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화조화의 장처인 산뜻한 담채와 간결한 구성 그리고 새의 생생한 표정이 잘 살아있는 그림이다. "현재거사(玄齋居士)"라는 긴 타원형의 백문인장이 찍혀 있다. 이 그림은 《집고금첩(集古今帖)》에 들어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