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응탐치(怒應耽雉: 성난 매가 꿩을 노려보다)

현재의 수묵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영모화이다. 이 그림도 『고씨화보』에 실린 임량(林良)의 그림과 소재가 같다. 그럼에도 현재 그림이 이렇게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유구한 매사냥 전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널리 성행한 한국의 매사냥은 중국과 일본에도 그 기술이 전해지고 해동청(海東靑)이라 불린 우리의 매가 수출되기도 하였다.

매 응(鷹) 자와 꿩 치(雉)자가 들어간 우리 지명이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매와 꿩은 한국인에게 친근한 새였고, 날짐승 세계의 천적(天敵)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장면이 현재의 먹빛 한 색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골법용필(骨法用筆) 그리고 응물상형(鷹物象形)을 모두 획득하여, 화폭 위에 긴박하게 펼쳐져 있다.

기세 좋고 늠름한 매는 사냥감을 확인하고는 부리를 꽉 다물고 눈은 사냥감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사냥의 개시만을 본능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런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진 매의 시선을 모르고 풀밭에서 한가로이 먹이감을 찾고 있는 수놈 꿩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롭다. 그리고 이 광경을 허공에서 한 눈에 꿰뚫고 있는 참새떼들은 곧 이어 벌어질 매의 꿩사냥에 지레 놀라 펄떡이고 있다. 이 와중에도 가지에 계속 붙어 있는 새들은 이런 광경을 많이 보아 와서 그리 유난떨 것 없는 늙은 참새들일 것이다.

이런 긴장감 흐르는 산 속의 광경을 거의 먹만으로 잡아낸 현재의 솜씨가 놀랍다. 매가 발딛고 있는 바위의 왼쪽 가장 자리쪽으로는 짙은 먹으로 우려내어 단단함과 경사진 모양을 잘 나타냈고, 바위 중심부분은 아주 엷은 먹으로 여백의 효과를 드러냈다. 윤기있는 매의 깃털들은 농담을 달리한 여러 번의 붓질로 풍성하게 칠하였고, 발은 촘촘히 마디를 그어 단단함이 배어났다.

배경에는 몸체를 틀며 가로질러 올라간 후 사라졌다 다시 가지를 드러낸 고목을 물흐르는 듯한 최소한의 붓질만을 그려냈다. 세월의 풍상에 휘어진 고목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가지에 앉은 참새들은 연갈색과 작은 점들로 형태를 나타냈으며 각각의 자세를 모두 달리하여 단조로움을 탈피하였다.

바위 밑의 꿩은 깃털 하나하나를 비교적 자세하게 그렸으며 꼬리는 시원하게 쭉 뻗어 있다. 눈 주위는 빨간색으로 칠하여 머리가 풀밭에 들어와 있어도 눈에 잘 띤다. 마지막으로 관서와 인장은 아주 작게 펼쳐서, 화폭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

안정된 구성과 원숙한 필묵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사물묘사가 어우러진 그림으로, 현재가 그린 많은 영모화들 중 손꼽히는 득의작(得意作)이라고 생각한다. "심현재인(沈玄齋印)"이라는 방형 주문의 인장이 찍혀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