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벽제시(石壁題詩: 석벽에 시를 짓다)

세속을 피해 산중에 은일하던 고사(高士)가 숲속을 거닐다 문득 시상(詩想)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비록 종이는 없어도 지니고 있던 붓 한자루로 마음 속에 맺힌 시상이 달아날 새라 곧바로 가던 길을 멈추고 석벽에 단숨에 적어 내려간다. 시동(侍童) 하나가 큼직한 먹그릇 하나를 받쳐들고 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자세하나 표정하나 흐트러짐 없이 공손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렇듯 석벽에 시를 적는 내용의 낭만적인 장면은 그 출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중국인들에게는 꽤나 널리 알려졌던 얘기인 모양이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專)』 인물옥우(人物屋宇)편에 "산을 보다 시가 떠올라 돌아서 벽에 적다. (看山詩就旋題壁)"라는 제명(題名)으로 이러한 내용의 그림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이를 참고로 하여 <석벽제시>를 그린 듯한데, 석벽에 나무를 첨가해 넣고 화면 하단을 계안(溪岸) 형태로 처리하여 화면을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꾸몄다. 또한 시동의 위치를 고사의 좌측으로 바꿔 얼굴을 보이게 함으로써 석벽에 글을 쓰고 있는 고사의 붓끝과 고사의 눈동자, 그리고 시동의 눈동자가 적절히 호응하게 하였으며, 석벽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나무 한 그루도 이런 호응관계에 일조하고 있다.

이렇듯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화보의 그림들을 능숙하고 천연스럽게 자기화시켜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탁월한 화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나아가 탄탄한 진경시대의 문화역량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서의 <기려심매>와 같이 그려진 그림으로, 석벽 한가운데 찍은 백문방형(白文方形) 인장의 인문(印文)은 "심사정이숙인(沈師正頤叔印)"이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