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첩장(長江疊嶂: 긴 강과 겹친 산)

심사정이 즐겨 보았던 화보로는 『고씨화보(顧氏畵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 등이 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다. 여기 보이는 그림이 바로 그러한 정황을 말해 주는 것인데, 『개자원화전』의 「모방명가화보(摹倣名家畵譜」 횡장각식(橫長各式)」에 있는 이공린(李公麟, 1049-1106)의 그림을 그대로 모본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왼편에 넓게 펼쳐진 바위 절벽과 산, 오른편에 일부 돌출한 바위 절벽, 그 사이를 흐르는 강에 띄워진 돛단배, 이 모든 것들이 이공린의 그림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수직으로 교차하면서 잘게 부서진 바위의 결 표현은 《표현양선생연화첩》에 있는 심사정의 〈수박귀범(水泊歸帆)〉절벽 표현에서 더욱 발전한 것으로 역시 『개자원화전』산석보(山石譜)의 유송년법(劉松年法)을 범본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심사정의 《소상팔경첩(瀟湘八景帖)》 〈산시청람(山市晴嵐)〉에서 더욱 정제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심사정은 이공린의 구도와 유송년의 바위 표현을 자신의 화면에 그대로 옮겨 그대로 옮겨 놓지는 않았다. 왼편으로 바위산을 더 많이 확장하였고 바위의 결 표현도 유송년보다 훨씬 세밀하고 반복적인 필치로 암벽의 질량감을 더욱 극대화 하고 있는데, 이것은 심사정이 남종화를 내면에서 소화하여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왼편 상단에서 시작된 길은 구불구불 계곡과 절벽을 돌아 오른편 상단에 있는 관문으로 이어지는데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선비 일행은 그 작은 나귀를 타고 어느 세월에 마을에 도착하려는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굽이굽이 이어진 장강(長江)의 유장함과 첩첩으로 펼쳐진 높은 산으로 인해 관문 너머의 마을은 쉽사리 외부의 접근을 용인하지 않는 선계(仙界)와도 같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