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림운산(長林雲山: 나무 숲 우거진 구름낀 산)

조선의 고유색을 한껏 현양하던 진경문화는 영조말년에 들어서 절정에 이른다. 이즈음 조선의 지식인 일각에서는 이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며 명(明)문화의 철저한 계승을 표방하고 나섰으니, 회화부분에서 이를 주도한 이가 현재 심사정과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다. 이들은 명(明) 오파(吳派) 계열의 남종문인화풍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겸재의 진경산수화풍이 풍미하던 당시 화단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렇듯 동일한 회화이념을 지닌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공감하며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각기 산수화를 비롯하여 화조화, 사군자 등을 그려 함께 장첩(粧帖)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표현양선생연화첩(豹玄兩先生聯畵帖)》이다. 따라서 여기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당연히 남종문인화풍을 강하게 반영한 것들이다. 이 <장림운산>은 《표현양선생연화첩》에 실려 있는 심사정의 작품이다. 필묘(筆描) 를 배제하고 먹의 번짐과 측필(側筆)의 횡점(橫點)으로 연운(煙雲)에 쌓여있는 습윤한 중국 남방의 경관을 묘사한 전형적인 미법산수(米法山水)이다.

다만 호방하고 대담한 묵법(墨法)으로 간결하면서도 자신있게 묘사된 산수의 표현은 너무도 천연스러워 중국의 정제된 미법산수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남종문인화풍에 대한 정심한 이해와 이를 토대로 개성있는 자가화풍(自家畵風)을 이룩한 심사정 만년(晩年)의 화경(畵境)을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