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은거(高士隱居: 고사가 은거하다)

<고사은거(高士隱居)>는 화보풍을 바탕으로 현재가 새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의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주산의 표현은 『개자원화전(芥子遠畵傳)』권3, 21쪽 관동(關仝) 산법(山法)을 변형시킨 것이다. 주산 봉우리가 오른쪽으로 기울고 그 아래로 낮은 봉우리와 원산 봉우리들이 나열되는 기본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암봉의 표현은 겸재의 부벽찰법(斧劈擦法)으로 대담하게 쓸어 내렸다. 암봉뿐만 아니라 암벽과 석파의 표현에서도 겸재식 부벽찰법이 두루 적용되었다. 겸재 제자임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주경을 이루는 정자, 정자를 둘러싼 송죽, 폭포가 흘러내리는 표현은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실린 마원의 구성법을 빌려온듯 듯하다.

옹이진 소나무의 구부러져 올라간 가지도 그렇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화보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았다. 비교적 초기 작품에 속하는 이 <고사은거>에서도 화보를 보되 남북종 화법을 절충 구사하여 새로운 작품을 이루어내려는 현재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는 고사(顧士)와 쌍상투를 튼 동자 그리고 정자의 모양새 등이 중국풍모를 보여준다. 오른쪽 위에 "현재제(玄齋製)"라는 관지와 "심씨이숙(沈氏頤叔)"이라는 방형 백문의 큰 인장이 찍혀 있다. (鄭)